(2017. 3. 22)

(노래 25제 중 Panic! At the Disco - Miss Jackson)


* 토큐쟈를 더빙판으로만 봤습니다 원어판과 말투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라는 건 아무도 모를 겁니다, 마담 노아."

 네로 남작의 목소리가 쓰디쓰다.

 마담 노아의 높은 웃음소리가 깔깔거리며 방에 메아리쳤다. 거리끼지 않고 마음껏 웃어젖히는데도 마담의 자태는 타고나게 우아하다. 남작은 그것이 무척 거슬렸다. 마담은 모든 것을 가졌다는 듯이 웃었다.

 "…황제 폐하가 돌아오시면 당신 따위는 눈 깜짝할 새에……"

 "충성스럽군요, 네로 남작!"

 꼭 비아냥만은 아니다. 남작을 향한 동정은 없었지만, 이유 없는 선심으로 마담이 덧붙였다.

 "황제님이 돌아오시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을게요."

 황제는 돌아온다. 그렇게 확인시켜주자마자 남작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는 모양을 마담은 관찰했다. 그의 충성심은 마담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폐하가 돌아오신 그때야말로 이 마담 노아의 시대가 열리겠지요!"

 의기양양하게 마담 노아가 선언했다. 네로 남작은 당장 마담의 목을 꿰뚫어버릴 생각을 했지만 누운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를 않았다. 기침하자 입에서부터 빛의 입자가 반짝거리며 흩어져 나왔다. '마담 노아, 망할 여자가……'

 "……황제 폐하가 돌아오시면 당신 마음대로는 안될 겁니다."

 "어쩜 그리 한결같을까."

 폐하, 폐하 하는 꼴이 제 장군님만 쫓아다니는 딸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져 마담 노아는 문득 짜증이 났다.

 "아직 젊잖아?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좀 더 자유롭게 살아보는 게 어때요?"

 그래, 어쩌면 젊은것들의 특징일지도 모른다고 노아는 생각했다.

 "죽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기고, 이번 일을 계기로 이제부터는 좀 다르게 살아보는 게 어떨까요? 내 방해가 되지 않게."

 남작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대답했다.

 "폐하는 곧 오십니다."

 마담 노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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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20

(노래 25제 중 하치 - 도넛 홀)


 카즈라바 코우타가 지구에서 사라진 지 반년이 되었다.


 '시작의 남자' 같은 이야기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일본은 전 세계에서 크리스천교 인구가 가장 적은 국가 중 하나이다. 자와메시는 바이블을 쓰지 않았다. 다만 서로가 서로의 사도였다.

 쿠레시마 미츠자네는 종종 극사실주의자가 된다. 그러면 과거의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그드라실 코퍼레이션은 삶의 전부로 삼기에도 충분한 무게였고 언젠가 회장이 될 소년의 나날은 충만할 만큼 바빴다. 그런 하루가 끝나고 이불 속에 몸을 끼워 넣으면 문득 기억이 나지 않는다.

 코우타상,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더라.

 미츠자네는 문득 서글픈 기분이 들어 잠드는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튿날 아침 커다란 창가에서 흘러넘치는 빛을 역광으로 받으며 양말을 신는 미츠자네는 다시 한번 현실주의자다. 학교에 가야 해, 졸업이 코앞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빛이 무언가를 닮았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미츠자네는 그런 기분을 사용인이 어깨를 털어주듯이 가슴에서 털어내고 가방을 들고 현관에서 구두를 신을 때쯤엔 이미 그런 기시감은 마음 깊숙이 가라앉아 녹고 없다.

 물질은 녹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미츠자네는 무심코 기본적인 균형방정식 문제를 틀리고 만다. 괜찮다, 피로했나 보군. 타카토라는 위로했지만 미츠자네는 영 마음이 무거웠다.


 해가 지고 달이 밝아졌다. 그래, 태양은 되돌아온다. 그리고 세상에 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없어진 기억도 어딘가에 수증기처럼 떠다니는 것이 아닐까? 왠지 본능적으로 질문을 던지자 곧바로 아침의 햇살이 생각을 스쳤다. 끝없이 넘치는 금빛이 닮은 건…


 미츠자네는 갑자기 접시 위에 올려져 있던 오렌지에 손을 뻗는다. 주먹을 쥐자 과즙이 주륵 미끄러져 내렸다. 한 손 가득히 새콤한 냄새가 배었다. 과즙은 샹들리에 아래에서 약간 금빛이다. 그래, 끝없이 넘치는 금빛이 닮은 건


 카즈라바 코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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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19)

(노래 25제 중 시이나 링고 - 의식)


"길고 풍요로운 삶을 살 거야."

마몬의 선언이었다.

벨은 재차 마몬의 뺨을 쓸었다. 살결은 매번 꿈결처럼 보드랍고 깨끗하다. 마몬의 꿈은 꿈에서 깨는 것이다. 벨은 꿈결을 붙잡아 늘인다. 볼을 꼬집으면 꿈에서 깬다는 것은 미신이다.

"그래, 오래 사는 게 제일 좋은 일이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마몬의 대꾸에 벨이 시싯, 하고 웃음을 흘린다. "그렇게 생각해?" 마몬은 생각지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가 애매한 대답을 한다.

"넌 죽으려고 했잖아."

"무슨 얘기야?"

벨의 대답은 전혀 모르는 어투이다. 마몬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링 쟁탈전." 아아. 마몬의 말에 당시의 기억이 벨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디오라마처럼 펼쳐진다. 싸우고 있을 때는 그렇게 흥분되는데, 지나고 나서 회상하는 기억은 밋밋하게 흑백영화처럼 재생된다. 늘 다음 싸움을 찾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그건 죽으려고 한 건 아니지. 결과적으로는 죽을 뻔했지만."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는데."

이를테면, 넌 가난하게 오래 살고 싶니?

대신 말한다―

"그럼 그런 마몬은 내가 지켜줘야지."

이빨이 훤히 드러나게 웃으며 벨이 억척스럽게 마몬을 품속으로 욱여넣듯이 안아 든다. 작은 몸체가 버둥거리며 거세게 반발하지만 개의치 않고 꼬옥 껴안는다. 금세 지친 마몬이 이내 몸을 벨에게 맡겨버리곤 중얼거린다.

"이번에야말로 마음에 없는 말이군."

"그건 맞아."

대답하며 벨이 마몬의 후드 위로 입을 맞춘다. 아기의 머리에 입을 맞추는 일은 어머니가 된 것 같아서 요상한 기분이었다.

서로 지켜주는 일은 있을 수 없지만 죽이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서로 맨얼굴을 마주한 적이 한 번도 없어도. 사랑은 사랑일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은 아니다.

"오래 살아야 이런 짓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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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11)

 인베스 게임은 우리의 추억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자물쇠를 열던 순간들을 우리는 모두 회상할 수 있습니다 아머드 라이더 아머드 라이더 가이무, 아머드 라이더 류겐, 아머드 라이더 바론... 과실을 베어먹던 나날로 기억은 이어집니다 거리의 틈새를 기억하십니까 나무 열매가 떨어지듯 그 사이로 똑 떨어지던 사람들 의아하던 괴물들 록비클이라고 하는 꽃다운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던 시절

 지구에 크랙이 존재했다는 역사를 입증하기 위해 수식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실은 기억의 대조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리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자와메시의 역사를 단지 타인과 서로 의존하여 기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카즈라바 코우타는 죽었습니다

 그 외의 설명은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절망하는 것이 옅은 희망에 매달리는 것보다 쉬운 일입니다 신 같은 것이 존재할 리 없지요 나는 여섯 살 때부터 무신론자였습니다

 타카츠카사 마이는 제가 죽였습니다

 신을 믿는 것은 도망치기 위함입니다 크랙은 이제 없는데 나의 마음은 포도가 줄기에서 뜯어지듯이 틈새 사이로 떨어져 수해에서 길을 잃습니다

 당신이 존재했으면 좋겠는데 당신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프지 않게 기억하는 방법을 가르쳐줘

(2017. 3. 8)

 1.

 "마츠리카 씨께는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어요."

 하나의 배틀을 끝낸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흐트러진 곳도 없는 루브도를 볼로 되돌리며 이리마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막 볼에 들어간 루브도처럼 흐트러진 곳이 없는 표정이지만 그렇다고 웃고 있지도 않다. 마츠리카는 약간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다.

 "마츠리카 씨가 어째서 캡틴인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말은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캡틴의 자리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츠리카 씨, 캡틴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가요?"

 이리마는 잠시 멈춘다. 마츠리카가 대답할 타이밍이다. 그러나 마츠리카는 당혹한 채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생각은 말이 되지 않고 마음은 생각이 되지 않는다.

 "저희는 둘 다 이제 곧 캡틴이 아니게 됩니다. 저는 이제서야 캡틴이 되었는데 말이죠. 캡틴의 자리란, 그렇게 귀한 겁니다."

 마츠리카는 사과를 할까 고민한다. 그것은 이리마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마츠리카 씨, 당신은 캡틴의 가치를 아나요?"

 대답을 정해놓고 하는 질문이다.

 마츠리카의 답은 살짝 고개를 젓는 것이다.


 2.

 "그랑블루, 나 미움 받았나봐요."

 스케치북에는 푸른 그림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잔디는 바람을 맞고 누웠다.

 '괴롭히는 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어.'

 "그래요?"

 마츠리카는 붓에 분홍색 물감을 묻힌다.

 "마츠리카는 처음 듣는 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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