먕님의 자캐커플 이안×에반스 성기사 AU (공미포 2000자) 작업했습니다!

커미션 신청 감사합니다.



비공개 계정 커미션

의뢰 내용: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다이아몬드&펄

강평(코우헤이) x 라라(우라라) (강평라라, 코우라라)

공백 미포함 4000자 이상 (실제 글자수 약 6500자)


리스네님 커미션

의뢰 내용: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

금랑(키바나)x마쿠와 (금랑마쿠, 키바마쿠)

공백 미포함 3500자


[키바마쿠] 소셜 네트워킹


리스네님 커미션

의뢰 내용:

언라이트

빌헬름x아이자크 (빌자크)

공백 미포함 4000자


[빌자크] 론도



리스네님 커미션

의뢰 내용:

도쿄구울: re

우리에 쿠키x시라즈 긴시 (우리시라)

공백포함 6000자



[우리시라] 타카츠키 센의 신작이 BL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리스네님 커미션

의뢰 내용:

포켓몬스터 USUM

구즈마 x 하우 (구즈하우)

같이 말라사다 사러 가기, 동거

공백포함 6000자


0.

 멀레인이 휴가를 냈다.

 주기적으로 천문대에 돌아가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는 아고지무시와 마마네를 돌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그러한 사유로 알로라리그 사천왕 자리를 거절하려 했던 멀레인이었지만, 쿠쿠이는 정기휴가를 약속해주면서까지 끈질기게 멀레인을 붙잡았다.

 그래서 멀레인의 약속받은 휴가가 찾아왔다.

 그리고 멀레인의 대타로, 할라가 초빙되었다.

 초대장을 펼친 할라가 호탕하게 웃으며 "하하하, 이거 안 갈 수는 없지!" 하고 선언했을 때, 구즈마는 '어이 스승, 그럼 나는?!' 하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같은 생각을 한 할라가 편지지에서 고개를 들고 구즈마를 보았다.

 "……다녀와, 스승."

 구즈마가 팔짱을 끼고 곁눈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쳇, 이제야 훈련이 물오르기 시작한 참이건만.'

 "그렇게 실망한 얼굴 하지 마라, 제자여.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수행은 계속되네!"

 "뭐?"

 "힘만이 강함이 아니지.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과 어우러지는 능력 역시 강함이지. 너도 스컬단과 함께할 수 있어서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았더냐."

 "……확실히."

 "그렇지만 앞으로의 삶에서는 잘 모르는 녀석이나, 생각지도 못한 녀석이랑 함께해야 할 일도 생기겠지."

 '생기려나……?'

 "우리 집은 넓어서, 한 사람이라도 집을 비우면 무척 조용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요새 하우도 릴리마을로 돌아왔으니까, 내가 없을 동안 대신 네가 우리 집에 있어 주지 않겠나?"

 "스승, 뭐라고?"

 "어때, 좋은 시련이지?"


1.

 "할아버지한테서 들었어~ 구즈마 씨, 오늘부터 우리 가족이라며?"

 하우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해왔다.

 "하? 무슨 소리냐. 스승이 돌아올 때까지 눌러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가족!"

 하우가 비죽 손을 내밀었다.

 구즈마는 주저하다가 악수에 응해주었다. 하우가 잡기에 구즈마의 손은 참 컸다.

 "사이좋게 지내자~"

 "어어."

 "그럼 집안 구경시켜줄게!"

 하우가 구즈마의 손을 그대로 잡아끌었다.


 하우의…… 섬의 왕의 집은 릴리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는 목조건물에 발을 들이자 관엽식물이 손님을 맞이했다.

 "이게 거실이야! 우리 집엔 사람이 많이 오니까, 의자가 많아~"

 작은 릴리마을 주민의 반은 앉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좌석 수의 소파가 늘어져 있었다. 거실 더 안쪽에는 높여져 있는 자리가 하나 있었다. 섬의 왕인 할라가 앉는 자리일까. 그렇지만 할라가 하나뿐인 높은 좌석에 고고하게 앉아있을 것 같은 사람은 아니라고, 구즈마는 생각했다.

 "어디 보자, 지금은 누가 있을까~"

 하우가 가장 가까운 문을 불쑥 열고 들어갔다. 부엌과 테라스를 포함한 방이 나타났고, 편한 옷차림을 한 남자 몇이 하우와 구즈마 쪽을 돌아보았다.

 "오, 하우 군이 돌아왔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 하우가 구즈마를 향해 설명했다―"다들 할아버지한테서 씨름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야!"

 "데려온 사람도 있군요?"

 "네, 할아버지가 없는 동안 같이 지낼 거래요!"

 "하하, 그럼 잘 부탁해요."

 청년이 손을 흔들었다.

 "구즈마 씨…… 맞죠?"

 "잘 알고 있군. 구즈마다."

 집안의 다른 손님들과 구즈마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하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히히……. 그럼~ 집안의 다른 곳도 보여주고 올게요!

 다시 문을 밀고 나온 하우가 건너편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다녀왔어요!"

 "어머, 알로라~ 하우!"

 인상이 좋은―하우를 닮은―중년의 여성이 환하게 말했다. 그리고 하우가 끌고 온 구즈마를 보더니, 덧붙였다.

 "친구도 데려왔네~?"

 "응, 할아버지가 없는 동안 같이 지낼 거래!"

 "정말~? 후후, 덕분에 할아버지가 없어도 조용하지 않겠네!"

 "응응, 그렇지~? 우선 우리 집안의 구석구석을 소개하고 있어!" 모친에게 웃어 보인 하우가 다시 구즈마에게로 되돌아갔다.

 "그러니까, 여기가 우리가 자는 방이야! 침대도 여유로우니까, 구즈마 씨도 같이 자면 되겠다!"

 "어? 아아……."

 그리고 하우가 설명하는 내내, 구즈마 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위화감을 느낀 구즈마가 시선을 내리자, 자신을 뚫어지도록 쳐다보고 있었던 야돈과 눈이 마주쳤다. 그 모습에, 하우가 깔깔 웃었다.

 "얘는 야돈이야! 야돈도 우리 가족인데, 침대는 안 쓰니까 걱정 마~"

 하우는 말하며 무릎을 굽혀 야돈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대신, 놀아주면 엄청 좋아하니까 구즈마 씨도 놀아줘~"

 하우가 오른쪽으로 빙글 돌았다.

 그러자, 야돈도 하우를 따라 오른쪽으로 빙글 돌았다.

 "……이런 식으로 놀아주면 돼!"

 하우가 일어서자, 야돈은 아쉽다는 듯 하우를 계속 바라보았다.

 "미안, 야돈! 지금은 구즈마 씨한테 우리 집을 소개해야 해서 바빠~"

 안방을 나온 하우가 마지막 남은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변기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게 되는, 조금 미묘한 배치 센스의 화장실이었다. 바닥에는 나마코부시가 두 마리 기고 있었다.

 '왜 화장실에…….'

 "여긴 보다시피 화장실~"

 하우가 커튼을 젖히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화장실이랑 욕실은 이어져 있음~"

 욕조에 누워있으면 왼편의 창문을 통해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는 배치였다.

 "뭐, 이런 느낌이려나!"

 "어어, 그래."

 "질문 있으면 언제든지~"


2.

 블라인드 사이로 환한 알로라의 햇살이 방 안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밝은 빛이 눈꺼풀에 노크를 해오자, 하우는 조금 부스럭거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우웅……"

 꿈틀거리며,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아침인 듯했다. 어머니는 거실이나 부엌에 나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고, 일광욕이라도 하러 나갔는지 야돈도 보이지 않았다. 구즈마만이 상체만 일으켜 침대 머리에 기대어 앉은 자세로 자신의 침대에 남아있었다.

 "구즈마 씨, 뭐 해……?"

 하품 섞인 목소리로 하우가 말했다.

 "아앙? 별로."

 무릎에 팔을 올려두고 손에 턱을 괸 채 구즈마가 대답했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잘 못 잤어~?"

 아직 잠겨있는 목소리로 묻는 하우는 반대로 아주 잘 잔 듯한 모습이었다.

 "……침대가 바뀌니까 말이지. 잠깐 잠들었는데 금방 깼다."

 "깨서 계속 그러고 있는 거야~?"

 "좀 더 잘까 고민하고 있었어."

 "응, 그게 좋겠다~ 잠이 부족하면 하루종일 피곤하니까 말이야~"

 하우가 기지개를 켜며 흥얼거리듯 말했다. 구즈마도 결린 목을 양쪽으로 돌리고는 대답했다.

 "아니, 너도 일어났으니까. 나만 자고 있는 것도 좀 별로고, 일어나야겠어."

 구즈마가 침대에서 뛰어내리듯이 내려왔다. 바닥이 조금 울렸다. 하우도 일어섰다.

 "그럼, 나랑 같이 말라사다 사러 갈래~?"


 하우의 손에 이끌려 구즈마는 집에서, 릴리마을에서 끌려 나왔다. 릴리마을 자체는 지역 축제와 유적의 명성에 비해 전혀 큰 마을이 아니었다. 축제 장소로 사용되는 씨름판을 지나서, 계단을 달려내려 갔다. 거기까지가 마을의 반이었다. 또 집 몇 채를 지나쳐 걷고, 또 한차례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바로 1번 도로였다.

 1번 도로는 푸르렀다. 나뭇잎 그림자가 드리우는 장소에서, 하우의 머리카락은 조금 초록빛으로 보였다. 구즈마는 바람에 춤추는 풀숲처럼 생생한 걸음으로 걸었다. 구즈마는 구부정한 자세로 소년을 뒤따랐다.

 "말라사다를 사려면~ 하우올리시티까지 가야 해~"

 "그렇지."

 "이렇게 구즈마 씨랑 같이 1번 도로를 걷고 있으니까 신기하다~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야~"

 "그러냐?"

 "어릴 때 생각이 나서 그런가? 사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말이야~"

 "그랬었지."

 하우가 고개를 기울이며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잘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흐린 기억 속에 불분명한 모습으로, 그러나 분명히 구즈마가 있었다. 그는 그때에도 할아버지의 제자로 들어와 있느라 릴리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머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 마음이 기억하니까~ 그러니까 그리운 기분이 드는 게 아닐까? 구즈마 씨는 어때?"

 "스승 근처에 알짱거리던 쪼그마한 게 있었지, 그래."

 "엑, 뭐야 그게~"

 하우는 즐겁다는 듯 통통 튀는 걸음으로 잔디 위를 걸었다. 풀 포켓몬 같다고 생각하며, 구즈마는 성큼성큼 하우와 보폭을 맞추었다.

 하우올리시티 변두리에 가까워짐에 따라 도로변에는 사람이 심은 꽃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얗고 빨간 꽃들을, 하우는 눈에 새겼다. 흰 꽃이 자신의 옆을 걷는 구즈마의 머리 같기도 했다. 하얗고 삐죽삐죽한 것이. 그리고 어느새 흙길이 포장된 도로로 바뀌었다. 아스팔트는 발에 경쾌하게 밟혔다.

 포켓몬센터에서는 온화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직진하면 하우올리시티이고, 반대편으로 걸으면 미즈키의 집이었다.

 "구즈마 씨, 잠깐 인사드리고 가자."

 "엉, 인사?"

 "미즈키네 어머니가 계실지도 모르니까~"

 "미즈키네 어머니?"

 "몰랐어~? 여기 근처, 미즈키네 집이거든~ 미즈키는 없겠지만."

 "걔는 바쁘니까, 뭐."

 "응, 그래도 들렀다 가자~"

 하우올리시티 변두리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하얀 집이 미즈키의 집이었다. 하우는 현관에 다가가 콩콩콩, 하고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집안에서 반응이 돌아왔다.

 "누구세요~?"

 "아주머니~ 저 하우예요!"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미즈키의 모친이 문을 열고 딸의 친구를 반겨주었다. 냐스도 하우에게 다가가 '누냐아!' 하며 애교를 부렸다.

 "알로라, 하우 군!" 미즈키를 닮은 어른이 알로라식 인사를 했다. "무슨 일 있니?"

 "말라사다를 사러 하우올리시티에 가고 있는데, 인사드리고 가려고 왔어요~"

 "정말~? 미즈키는 참 좋은 친구를 뒀구나."

 하우에게 말한 미즈키의 모친은 구즈마에게도 시선을 주었다.

 "너도 미즈키 친구니?"

 "예?"

 구즈마가 풀이 죽은 포켓몬처럼 멈칫했다가, 하우에게 옆구리를 찔리고 다시 말했다.

 "예, 미즈키의 친구입니다. 미즈키에게는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익숙지 않은 경어체였다. 하우는 킥킥 웃었다. 미즈키의 모친은 고개를 저었다.

 "미즈키야말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겠지. 우리 미즈키랑 잘 지내줘서 고마워."

 '잘 지냈나……?'

 구즈마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우는 그런 구즈마를 구제해주기로 했다.

 "아주머니, 그럼 이만 가볼게요! 맛있는 말라사다는 아침 일찍 동나버리니까 서둘러야 해요~"

 "그래, 즐겁게 다녀오렴!"


 포켓몬센터와 트레이너스쿨을 지나쳐서 직진하면, 하우올리시티였다. 하우올리시티는 혈기왕성한 도시였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비치사이드에리어의 소금기 섞인 바람은 정신을 달처럼 맑게 했다. 도로변에 늘어선 가로수와, 저마다 쇼윈도를 뽐내는 상호들. 말라사다숍에 가기 위해서 쇼핑에리어 남쪽까지 걸어야 했다.

 페로리무 간판으로 상징되는 말라사다숍은 문밖에까지도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겨오는 향긋한 가게였다. 하우는 힘차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침인데도 가게 안에는 손님이 제법 많았다. 많은 수가 하우와 같은 단골손님일 것이다. 그들의 존재로 인해 환상라사다와 같은 특정 메뉴는 도무지 오후까지 남아나지를 않았다. 하지만 하우는 일찍 일어나는 착한 손님이었다.

 "알로라가 만든 기적의 맛! 말라사다숍에 어서 오세요!"

 "알로라~ 환상라사다 두 개 주세요!"

 "환상라사다 두 개, 총 400엔입니다!"

 "그리고 테이크아웃용 큰 말라사다도 한 팩 주세요!"

 "그럼 환상라사다 두 개랑 큰 말라사다 한 팩, 전부 해서 3400엔입니다, 손님~"

 하우는 바지 주머니 속을 뒤적거려 꾸깃꾸깃한 지폐 사이에서 동전을 꺼냈다. 하우로부터 돈을 건네어 받은 직원은 말라사다와 함께 동전 하나를 하우에게 다시 거슬러주었다.

 "구즈마 씨, 이건 먹고 가자!"

 하우가 환상라사다 한 개를 구즈마에게 건네며 씨익 웃었다.

 "그래, 고맙다. 꼬마."

 구즈마는 이왕이면 달콤라사다가 좋았다는 쪼잔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3.

 할라는 다음날 돌아온다고 했다.

 구즈마는 테라스에 서 있었다. 일가는 잠들어 있었지만, 구즈마는 사실 내내 잘 잠들 수가 없었다. 하우에게는 수면 환경이 바뀌니 불편하다고 했지만, 불편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이토록 편안하고 넓고 화기애애한 집에서 잠든다는 일이 구즈마에게는 낯설어서 있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잠들지 못한 나시가 구즈마의 눈앞을 지나갔다. 나시는 참 키가 컸다. 그리고 릴리마을의 별은 참 밝았다. 구즈마도 나시처럼 높은 곳에서 별이 수 놓인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포마을에서는 늘 높은 곳에 있었지만, 비가 멎지 않는 마을을 비춰주는 별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참 필사적으로 살아왔다.

 이제는 어엿한 트레이너가 된 소년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구즈마는 이전에 이곳에 있었을 시절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악에 받쳐서, 꼭 화장실의 나마코부시처럼 내장이라도 토해낼 것처럼 처절했던 자신을 할라가 받아들여 주었다. 하우는 집안을 소개한다며 방방 뛰었지만, 구즈마에게 있어서는 복습과도 같았다. 불행했던 시절의 기억은 좀처럼 잊을 수 없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절박한가요?

 묻듯이, 쳐다보던 작은 소년의 눈빛도.


 문득 하품한 구즈마는, '이제 나도 슬슬 졸린 모양이군'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방으로 되돌아왔다. 지금은 눈을 꾹 감은 하우 옆의 빈 침대에 소음을 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눕고, 구즈마도 눈을 감았다.



(2016. 7. 22)

리스네님 커미션

의뢰 내용 :

Fate-Zero

정복왕 이스칸달 x 웨이버 벨벳 (이스웨이)

포카포카한 분위기


The First Day of Christmas

 "……헌데 꼬마."

 우직한 목소리에 꼬마”―웨이버 벨벳이 고개를 돌렸다. 웨이버 벨벳은 늘 예상을 벗어나는 돌발적인 서번트 탓에 항상 조마조마했다. 성배전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스트레스 요인인 것을 서번트마저 비상식인이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나날, 웨이버 벨벳의 얼굴에서는 미소의 흔적이 착실하게 지워져가고 있었다.  악의 없이 자신을 부르는 라이더의 목소리에도 웨이버의 표정은 잔뜩 구겨졌다.

 "무슨 일이야, 라이더."

 "저 커다란 나무가 바로 그……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하는 것인가?"

 거실에 자리잡은 거대한 녹색 인공물을 가리키며 정복왕 이스칸달이 천진하게 물었다. 웨이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 맞아. 저걸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부르지…… 그런데 네 시대에도 성탄절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어?"

 그레고리력 12 25일에 기념하기 시작한 건 현대에 와서부터지만. 웨이버가 중얼중얼 덧붙였다.

 "이런 성탄절은 없었지."

 이스칸달의 시선이 나무를 훑어내려갔다. 검은 플라스틱으로 된 줄기에서 솟아나오는 풍성한 진녹색의 바늘 같은 나뭇잎. 나무를 칭칭 감싼 반짝반짝한 작은 전구의 빨강 파랑 연두 노랑. 나무에 열리는 탐스러운 열매를 흉내내는 붉은색과 금색의 구슬 장식. 나무의 꼭대기에는 커다란 별이 위풍당당하게 번뜩이고 있다. 머릿속으로 자기 자신의 풍채를 번뜩이는 금색 별에 비유하며 정복왕 이스칸달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떡거렸다.

 "가만, 꼬마. 그러면 오늘이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는 게 아닌가!"

 ", 그건 그런데……?"

 말하던 웨이버의 얼굴에 퍼뜩 짙은 그림자가 졌고, 바로 다음 순간 웨이버는 양팔을 쭉 뻗고 양손을 내저으며 '아니, 아니야, 절대 아니야' 제스처를 취하며 저만치 방구석에 가있었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라이더,"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웨이버가 운을 띄웠다. 단어 하나하나에 무게를 담으며.

 "나는 절!"

 진녹색 눈동자가 이스칸달의 눈빛을 직시했다.

 "절대! 오늘은 집 밖으로 안 나갈거니까 말이야! 절대로!"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웨이버의 진심어린 선언에 이스칸달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꼬마……"

 "뭐야, 라이더."

 "짐은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교환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 확실히 선물 교환은 대표적인 성탄절의 기념법 중 하나지."

 이스칸달이 턱짓으로 맥켄지 부부를 살짝 가리키곤 웨이버에게 소곤거렸다.

 "그런데 꼬마는 아직 선물을 안 사지 않았나."

 움찔. 웨이버가 눈에 띄게 움직였다.

 "이제와서 통신판매로 결제해도 늦지…… 정말로 그걸로 괜찮나, 꼬마?"

 "우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된 웨이버 벨벳이 찌푸린 눈으로 이스칸달을 올려보았다. 얄밉게도 이스칸달은 의기양양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어쩔 수 없지. 오늘만이다?"

 

 웨이버 벨벳은 본래 백화점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물건은 실질적 가치에 비해 네임밸류에 힘입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그런 주제에 사람은 또 더럽게 많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을 여유롭게 수용할 만큼 넓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많이 걷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신세대의 초 모던한 마켓을 처음으로 구경하느라 신이 난 정복왕 이스칸달님께는 아무래도 좋은 것 같다.

 "이 시대의 인간들은 가벼운 걸 상당히 좋아하는 모양이군."

 24k 다이아 반지가 이스칸달 뒤로 반짝거렸다. 사이가 좋아보이는 커플 한 쌍이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어 그렇지."

 웨이버가 대충 대답했다. 숨쉴 틈도 주지 않는 크리스마스의 인파와 향수 코너에서 들이켰던 과한 향기와 주얼리의 쉬지 않는 반짝거림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조금 두통이 오고 있었다.

 "성배전쟁에서 이기면 사주지."

 "으음?"

 이스칸달히 하하하 웃었다.

 "이거이거, 꼭 이겨야겠구만."

 

 "오옷, 여기에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군!"

 이스칸달의 말을 듣고 사람이 과하게 모인 그 앞을 보니 확실히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었다. ,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웨이버가 생각한 순간 이미 이스칸달은 그의 손목을 잡고 그 인파의 한가운데로 이끌고 있었다. 이스칸달의 커다란 덩치에 시선이 모였다 분산되었다.

 트리에는 구슬 장식 대신 수많은 종이 조각이 알록달록하게 달려있었다. '루리야스히토' '아스카쨩과 영원히 함께' 따위의 문구가 제각각 개성있는 글씨체로. 이스칸달은 그것을 유심히 읽고 있었다.

 "꼬마도 하나 쓰지 않겠는가!"

 활짝 웃었다.

 웨이버의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 !"

 지나치게 큰 소리로 버벅거리며 웨이버가 말했다.

 ", 쓰고 싶으면 너나 쓰던가!"

 분산되었던 시선이 다시 웨이버와 이스칸달에게로 쏠렸다가 이내 다시 해산했다. 웨이버의 얼굴만이 새빨갛게 익은 채로 남아있었다. 이스칸달은 껄껄 웃으며 종이를 집고 있었다. 질린 내색을 하면서도 웨이버는 한쪽 눈으로 이스칸달이 눌러쓰는 글씨를 곁눈질로 지켜보았다.

「정복왕 이스칸달웨이버 필승」

 "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

 "호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질색을 하며 허둥대는 웨이버. 쪽지를 나무에 걸며 이스칸달은 웨이버에게 늘 그러했듯 태평하게 웃는다.

 "늘 필승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열쇠!"

 "바보, 정복왕 이스칸달 하트 웨이버는 도대체 뭐냐고……!"

 "어느 팀보다도 단단한 결속으로 이 성배전쟁을 이겨야 하지 않겠나, 꼬마!"

 "아아, 그러십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가 아니라, 뭐하는 거야, 정말……!"

 

 "그러고 보니 아직 맥켄지 부부께 드릴 걸 안 샀네……."

 "생각해둔 물건이라도 있나?"

 "아니…… 그게 고민이야."

 하아, 웨이버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눈 밑이 그늘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백화점은 정말로 지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줄어들긴커녕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만 있었다. 이래서 절대 나오지 않겠다고 했건만. 그렇지만 맥켄지 부부를 생각하면 밖에 나온 것이 마냥 후회되지만은 않았다. 다만 장소가 하필 백화점이어야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일부러 독한 표정을 지으며 이스칸달을 쳐다보았다. 이스칸달은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진지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근엄한 사자 같은 분위기였다.

 "……, 이러니저러니 해도 꼬마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온 선물이 가장 값지지 않겠는가!"

 "도움 안 돼! 그치만 역시 그렇겠지……."

 크리스마스 캐롤이 어딘가의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와 곳곳의 벽에 반향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첫날 내 사랑이 나에게 보내주었죠 배나무의 자고새~ 크리마스 둘쨋날 내 사랑이 나에게 보내주었죠~ 거북이 비둘기 두 마리 그리고 배나무의 자고새~

 "……일단 여기엔 살만한 게 없는 것 같아. 돌아가자."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엔 빛이 가득하다. 살아있는 나무에 두른 전구는 나무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해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로수마다 반짝거렸다. 찬 바람은 상점마다 틀어놓은 캐롤이 섞여든 채 불어와 웨이버의 뺨에 닿았다. 그렇게 걷던 웨이버의 코끝에 무언가가 스쳤다.

 "라이더, 가보자!"

 달콤한 냄새의 원천은 베이커리였다. 유리 안쪽에 전시된 화려한 생크림 케이크가 먹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웨이버가 쾌재를 불렀다. 딱 알맞는 선물!

 "역시 짐의 마스터, 훌륭한 선택이군!"

 "흐흥……."

 별로 기쁘지 않은 척을 하며 웨이버가 검지로 볼을 긁적거렸다. 이스칸달이 한눈에 꿰뚫어보게 된 부끄러울 때의 습관이었다. 베이커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에 달린 종이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시선을 받게 되는, 그래서 한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 들어온 척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게 하는 류였다.

 "아주머니, 3단 크리스마스 케익 하나 주세요!"

 천 엔 지폐를 세 장 건네었다.

 "거스름돈 육백 엔 드렸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케이크 상자와 동전 두 개를 건네며 아주머니가 웃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 울림이 평화롭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라이더와 마스터가 동시에 외쳤다.

 

 크리스마스 이브 열한시 오십팔분. 이스칸달은 케이크에 초를 꽂고

 크리스마스 이브 열한시 오십구분. 웨이버가 초에 불을 붙이고

 

 "메리 크리스마스!"

 맥켄지 주택에, 아주 오랜만에 그 소리가 크게 울려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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