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22)

리스네님 커미션

의뢰 내용 :

Fate-Zero

정복왕 이스칸달 x 웨이버 벨벳 (이스웨이)

포카포카한 분위기


The First Day of Christmas

 "……헌데 꼬마."

 우직한 목소리에 꼬마”―웨이버 벨벳이 고개를 돌렸다. 웨이버 벨벳은 늘 예상을 벗어나는 돌발적인 서번트 탓에 항상 조마조마했다. 성배전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스트레스 요인인 것을 서번트마저 비상식인이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나날, 웨이버 벨벳의 얼굴에서는 미소의 흔적이 착실하게 지워져가고 있었다.  악의 없이 자신을 부르는 라이더의 목소리에도 웨이버의 표정은 잔뜩 구겨졌다.

 "무슨 일이야, 라이더."

 "저 커다란 나무가 바로 그……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하는 것인가?"

 거실에 자리잡은 거대한 녹색 인공물을 가리키며 정복왕 이스칸달이 천진하게 물었다. 웨이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 맞아. 저걸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부르지…… 그런데 네 시대에도 성탄절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어?"

 그레고리력 12 25일에 기념하기 시작한 건 현대에 와서부터지만. 웨이버가 중얼중얼 덧붙였다.

 "이런 성탄절은 없었지."

 이스칸달의 시선이 나무를 훑어내려갔다. 검은 플라스틱으로 된 줄기에서 솟아나오는 풍성한 진녹색의 바늘 같은 나뭇잎. 나무를 칭칭 감싼 반짝반짝한 작은 전구의 빨강 파랑 연두 노랑. 나무에 열리는 탐스러운 열매를 흉내내는 붉은색과 금색의 구슬 장식. 나무의 꼭대기에는 커다란 별이 위풍당당하게 번뜩이고 있다. 머릿속으로 자기 자신의 풍채를 번뜩이는 금색 별에 비유하며 정복왕 이스칸달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떡거렸다.

 "가만, 꼬마. 그러면 오늘이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는 게 아닌가!"

 ", 그건 그런데……?"

 말하던 웨이버의 얼굴에 퍼뜩 짙은 그림자가 졌고, 바로 다음 순간 웨이버는 양팔을 쭉 뻗고 양손을 내저으며 '아니, 아니야, 절대 아니야' 제스처를 취하며 저만치 방구석에 가있었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라이더,"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웨이버가 운을 띄웠다. 단어 하나하나에 무게를 담으며.

 "나는 절!"

 진녹색 눈동자가 이스칸달의 눈빛을 직시했다.

 "절대! 오늘은 집 밖으로 안 나갈거니까 말이야! 절대로!"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웨이버의 진심어린 선언에 이스칸달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꼬마……"

 "뭐야, 라이더."

 "짐은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교환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 확실히 선물 교환은 대표적인 성탄절의 기념법 중 하나지."

 이스칸달이 턱짓으로 맥켄지 부부를 살짝 가리키곤 웨이버에게 소곤거렸다.

 "그런데 꼬마는 아직 선물을 안 사지 않았나."

 움찔. 웨이버가 눈에 띄게 움직였다.

 "이제와서 통신판매로 결제해도 늦지…… 정말로 그걸로 괜찮나, 꼬마?"

 "우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된 웨이버 벨벳이 찌푸린 눈으로 이스칸달을 올려보았다. 얄밉게도 이스칸달은 의기양양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어쩔 수 없지. 오늘만이다?"

 

 웨이버 벨벳은 본래 백화점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물건은 실질적 가치에 비해 네임밸류에 힘입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그런 주제에 사람은 또 더럽게 많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을 여유롭게 수용할 만큼 넓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많이 걷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신세대의 초 모던한 마켓을 처음으로 구경하느라 신이 난 정복왕 이스칸달님께는 아무래도 좋은 것 같다.

 "이 시대의 인간들은 가벼운 걸 상당히 좋아하는 모양이군."

 24k 다이아 반지가 이스칸달 뒤로 반짝거렸다. 사이가 좋아보이는 커플 한 쌍이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어 그렇지."

 웨이버가 대충 대답했다. 숨쉴 틈도 주지 않는 크리스마스의 인파와 향수 코너에서 들이켰던 과한 향기와 주얼리의 쉬지 않는 반짝거림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조금 두통이 오고 있었다.

 "성배전쟁에서 이기면 사주지."

 "으음?"

 이스칸달히 하하하 웃었다.

 "이거이거, 꼭 이겨야겠구만."

 

 "오옷, 여기에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군!"

 이스칸달의 말을 듣고 사람이 과하게 모인 그 앞을 보니 확실히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었다. ,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웨이버가 생각한 순간 이미 이스칸달은 그의 손목을 잡고 그 인파의 한가운데로 이끌고 있었다. 이스칸달의 커다란 덩치에 시선이 모였다 분산되었다.

 트리에는 구슬 장식 대신 수많은 종이 조각이 알록달록하게 달려있었다. '루리야스히토' '아스카쨩과 영원히 함께' 따위의 문구가 제각각 개성있는 글씨체로. 이스칸달은 그것을 유심히 읽고 있었다.

 "꼬마도 하나 쓰지 않겠는가!"

 활짝 웃었다.

 웨이버의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 !"

 지나치게 큰 소리로 버벅거리며 웨이버가 말했다.

 ", 쓰고 싶으면 너나 쓰던가!"

 분산되었던 시선이 다시 웨이버와 이스칸달에게로 쏠렸다가 이내 다시 해산했다. 웨이버의 얼굴만이 새빨갛게 익은 채로 남아있었다. 이스칸달은 껄껄 웃으며 종이를 집고 있었다. 질린 내색을 하면서도 웨이버는 한쪽 눈으로 이스칸달이 눌러쓰는 글씨를 곁눈질로 지켜보았다.

「정복왕 이스칸달웨이버 필승」

 "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

 "호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질색을 하며 허둥대는 웨이버. 쪽지를 나무에 걸며 이스칸달은 웨이버에게 늘 그러했듯 태평하게 웃는다.

 "늘 필승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열쇠!"

 "바보, 정복왕 이스칸달 하트 웨이버는 도대체 뭐냐고……!"

 "어느 팀보다도 단단한 결속으로 이 성배전쟁을 이겨야 하지 않겠나, 꼬마!"

 "아아, 그러십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가 아니라, 뭐하는 거야, 정말……!"

 

 "그러고 보니 아직 맥켄지 부부께 드릴 걸 안 샀네……."

 "생각해둔 물건이라도 있나?"

 "아니…… 그게 고민이야."

 하아, 웨이버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눈 밑이 그늘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백화점은 정말로 지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줄어들긴커녕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만 있었다. 이래서 절대 나오지 않겠다고 했건만. 그렇지만 맥켄지 부부를 생각하면 밖에 나온 것이 마냥 후회되지만은 않았다. 다만 장소가 하필 백화점이어야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일부러 독한 표정을 지으며 이스칸달을 쳐다보았다. 이스칸달은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진지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근엄한 사자 같은 분위기였다.

 "……, 이러니저러니 해도 꼬마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온 선물이 가장 값지지 않겠는가!"

 "도움 안 돼! 그치만 역시 그렇겠지……."

 크리스마스 캐롤이 어딘가의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와 곳곳의 벽에 반향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첫날 내 사랑이 나에게 보내주었죠 배나무의 자고새~ 크리마스 둘쨋날 내 사랑이 나에게 보내주었죠~ 거북이 비둘기 두 마리 그리고 배나무의 자고새~

 "……일단 여기엔 살만한 게 없는 것 같아. 돌아가자."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엔 빛이 가득하다. 살아있는 나무에 두른 전구는 나무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해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로수마다 반짝거렸다. 찬 바람은 상점마다 틀어놓은 캐롤이 섞여든 채 불어와 웨이버의 뺨에 닿았다. 그렇게 걷던 웨이버의 코끝에 무언가가 스쳤다.

 "라이더, 가보자!"

 달콤한 냄새의 원천은 베이커리였다. 유리 안쪽에 전시된 화려한 생크림 케이크가 먹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웨이버가 쾌재를 불렀다. 딱 알맞는 선물!

 "역시 짐의 마스터, 훌륭한 선택이군!"

 "흐흥……."

 별로 기쁘지 않은 척을 하며 웨이버가 검지로 볼을 긁적거렸다. 이스칸달이 한눈에 꿰뚫어보게 된 부끄러울 때의 습관이었다. 베이커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에 달린 종이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시선을 받게 되는, 그래서 한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 들어온 척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게 하는 류였다.

 "아주머니, 3단 크리스마스 케익 하나 주세요!"

 천 엔 지폐를 세 장 건네었다.

 "거스름돈 육백 엔 드렸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케이크 상자와 동전 두 개를 건네며 아주머니가 웃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 울림이 평화롭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라이더와 마스터가 동시에 외쳤다.

 

 크리스마스 이브 열한시 오십팔분. 이스칸달은 케이크에 초를 꽂고

 크리스마스 이브 열한시 오십구분. 웨이버가 초에 불을 붙이고

 

 "메리 크리스마스!"

 맥켄지 주택에, 아주 오랜만에 그 소리가 크게 울려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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