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4)

 스트리밍 종료를 클릭하자마자 미소라의 얼굴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미소라는 사실은 팬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귀찮고, 이상하고, 기분 나쁘고. 단편적이고 인위적인 이미지를 수긍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나아가서는 광신하는 남자들. 필요한 것이 있을 때 호응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팬은 미소라에게 있어서 굳이 말하자면 필요하기 때문에만 두는……싫은 쪽이다. 이스루기 미소라는 이성적이고, 의심 많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무심코 믿는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낯선 일이라는 뜻이다.

 찰칵, 찰칵. 두 번이나 찍히고 나서야 미소라는 자신이 무심코 타키가와 사와를 믿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자의 카메라라는 사실조차 일순 잊고 있었다. 팬들에게 필요 이상의 먹이를 주는 것만큼은 싫은 일인데도.

 찰칵. 그리고 미소라는 세 장, 네 장째의 사진이 찍히도록 허락하고야 말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무심코가 아니었다.

 자신이 카메라를 향해 웃기에 사와가 웃는지, 사와가 웃기에 자신이 카메라를 향해 웃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기억을 잃은 수상한 물리학자의 미소에 걸었듯이, 또 한 번 미소에 걸기로 했다.

 사와처럼 환한 미소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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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7)

 

 “그럼, 그럼……”

 주방을 뒤적거리는 타키가와 사와를 확 노려보는 이스루기 미소라. ‘어디까지나 우리 정체를 밝히지 않을’ 기사에 연구실에 대한 내용은 전혀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한 센토 때문에 ‘본격적인’ 것은 취재할 수 없게 되었지만, 작은 사실도 부풀리면 특종이라는 것이 사와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메뉴판을 꼼꼼히 받아적기도 하고 냉장고를 열어보기도 하고 커피포트를 들춰보기도 하고.

 “그렇게 뒤져봐야 아무것도 안 나오고.”

 “특종과 특종이 아닌 것의 차이는 사실의 크기가 아닌 관점의 넓이.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생각은 완전 금물!”

 기자의 철학을 한쪽 귀로 흘리며 미소라는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피곤하다. 어떻게 조용히 시킬 수 없을까. 센토, 귀찮은 걸 데려와서는. 문을 열어놓는 멍청이는 또 어떻고. 어떻게 조용히 시키고 돌려보낼 방법이…… 앗, 이어졌다.

 “그럼 차라리 커피라도 마시고 빨리 가버리는 게 낫겠고. 늦은 기사는 아무도 관심 없고.”

 “어어, 그래도 나는 좀 더 천천~히 구경하다 가고 싶은데!”

 “좀 더 빨~리 갔으면 좋겠고.”

 적당한 컵을 집어 포트에 있던 커피를 아무렇게나 따라서 뻔뻔스러운 기자에게 건네었다. 미소라의 불친절한 눈빛을 마주 본 사와는 살짝 웃었다.

 “설탕 넣어줘.”

 “이것저것 요구하고, 최악이고.”

 불만을 곱씹듯이 중얼거린 미소라가 각설탕 두 개를 퐁당퐁당 빠트렸다. 사와는 말없이 팔에 튄 커피 방울을 닦아내었다.

 “사장님은 저쪽?”

 웃었다. 미소라는 그에게 미소를 뺏긴 것처럼 한층 인상을 구겼다.

 “식기 전에 마셨으면 좋겠고.”

 미소라의 재촉에 사와가 잔을 들었다. 후, 후, 하고 두 번 불고 조심스럽게 입에 가져다 댄다. ‘드디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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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31~2017.03.19)

가면라이더 류우키 나이반전+젠더벤드 농촌 AU

 

0.

 아사쿠라 이로하浅倉威呂巴를 모르는 이는 마을에 없었다.
 아사쿠라 이로하라 함은 언젠가부터 마을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었던, 열두살 남짓 되어보이는 외모의, 악질의 계집애다. 훔친 뱀가죽 옷을 입고 작은 손에는 억세게 쇠파이프를 쥔 계집. 계집은 그 파이프를 들고 무엇이든 패고 보는 고약한 성질이었다. 아사쿠라가 패고, 먹는 것이 시궁창의 쥐새끼나 주인 없는 들개였을 적에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는 점차 키우는 가축이나 마을의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 악명은 마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지경이 되기에 이르렀다.
 모르는 이는, 키타오카北岡 저택의 아가씨 키타오카 슈코北岡秀子 정도였다. 키타오카 집안은 마을의 유일한 변호사 집안이라, 일가족이 사는 키타오카 저택은 마을에서 으뜸으로 고급스러운 으리으리한 목조건물이었다. 능력 좋기로 유명한 키타오카 변호사에게 구원받은 것이 바로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로 연명하는 유라由良 집안으로, 폭력사건에 휘말린 것을 키타오카가 세 치 혀로 구해낸 것이었다. 실로는 마을에 유라가 어느 정도로 유죄인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무죄든 유죄든간에 유라가 법원에 설 돈도 없는 가난한 집안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도 없었다. 유라는 키타오카에게 끝내 선임비를 지불하지는 못하였으나 대신 어린 딸을 사용인으로 저택에 보냈다. 빚도 갚을 겸 딸을 좋은 집안에 맡겼으니 유라에게도 잘 된 일이었다. 그리하여 키타오카 저택으로 보내어진 유라 아이由良吾以는 키타오카의 아가씨를 퍽이나 잘 따랐다. 아이가 아가씨, 하고 부르면 아가씨는 아―쨩, 하고 애칭으로 대답할 정도로 아가씨도 사용인을 몹시나 마음에 들어했다. 그렇게 부모, 사용인 할 것 없이 그토록 애지중지 보살핌받으며 자란 키타오카 슈코였기 때문에야말로 아사쿠라를 몰랐다.

1.

 키타오카 슈코가 아사쿠라를 만난 것은 드물게도 아―쨩이 옆에 붙어있지 않던 날이었다. 저택에서 멀지 않은 학교에서 집에 오는 것 하루 정도는 함께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이라 판단한―늘 지켜줘야 할 것 같기만 한 아가씨도 실은 자신보다 다섯살이나 많아 열다섯살이었으니―아이는 키타오카의 수업이 끝난 시각, 창고에서 곡식을 분류하고 있었다.
홀로 논두렁길을 걷던 키타오카가 아사쿠라와 마주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계절에도 몸에도 맞지도 않는 뱀가죽 옷을 걸친 아사쿠라는 갓 익기 시작한 벼를 쥐어뜯어 입안에 털어놓고 있었는데, 그런 기묘한 광경을 그냥 지나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2.

 공격은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통증보다 앞서 머릿속이 텅 비듯이 차가워졌고, 의식적으로 당황한 순간 충격 아래에 숨어있던 아픔이 되돌아와서 슈코는 그제서 비명을 질렀다. 시야는 희미하고 어지러웠는데 색깔만이 튀었다. 하늘은 어이없는 파란색이었고 아사쿠라가 입은 무늬가 화려한 옷은 연한 노랑에 검정이 뒤범벅되어 시야를 난리로 뒤흔들었다. 보이는 정면에는 아사쿠라의 얼굴이 하늘에 걸린 모빌처럼 흔들거렸다. 정신을 제대로 가다듬기도 전에 얼굴에 주먹이 날아왔다. 슈코는 힘껏 고개를 돌렸지만 피하려는 시도가 허무하게 주먹은 옆얼굴에 그대로 날아들었다. 시야에 빨강이 확 튀었다.

  아, 죽는다.

 죽을지도 몰라.

 죽고싶지 않아.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생각한 순간 슈코는 아사쿠라의 드러난 맨 손목을 물어뜯을 수 있었다.

 고기가 씹히는 촉감이 이빨에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아사쿠라의 동작이 멈칫했다. 반격이 먹힌 것인가. 점점 안정되어가는 시야에 비친 아사쿠라는 이상한 표정이었다. 슈코는 처음으로 겁이 났다.

 "...짜증나."

 이제는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각오해야 하는 것을 깨닫고 슈코는 무작정 다리를 들었다. 치마가 말려올라가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아사쿠라의 복부를 노리고 힘껏 찼다. 볼품없이 버둥거리는 꼴이긴 했지만 확실히 맞았다. 아사쿠라는 힘이 센 것에 비해 의외로 몸이 가벼웠다 (사실 열 살짜리 소녀의 몸의 크기를 생각하면 의외는 아니었다). 어떻게든 떼어놓은 아사쿠라는 금방 다시 덮쳐와서, 비틀거리며 일어서던 슈코를 다시 한번 넘어뜨렸다. 아사쿠라는 거의 불사신처럼 느껴졌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겠다 생각

 "아가씨!"

 하는 순간마다 자신만의 구원자처럼 나타나는 사람이 있었다. 키타오카 개인 소유의 천사.

 "아­-쨩!"

 키타오카 슈코의 충직한 유라 아이는 두 명의 남자와 한 마리의 개를 거느리고 있었다. 모두 키타오카 소유의 물건이다.

 "아가씨를 데려와주세요."

 죄송합니다. 제 탓입니다. 항상 곁에 있어드려야 했는데. 면목없습니다, 아가씨.

 아사쿠라의 울음소리와 사랑해 마지않는 사용인의 목소리가 난잡하게 섞여 무엇하나 선명하게 들리지 않았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붕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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