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10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듯한 낯선 감각이었다.

 책을 못 읽게 되었다. 읽는 법을 잊어버렸다.

 새 학기를 앞둔 7월에 체렌은 교사를 그만두었다. 8학년 교과서를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체렌은 8학년의 나이에

 그를

 만나서.

 

 처음 만났을 땐 이름도 없는 사람이었다. 한참을 그랬다. 그는 ‘N’이었다. 그로부터 계절이 여섯 번 변했을 때 ‘N’의 의미를 물었다. Natural Number. 그가 말했다. 자연수. 자연수의 N.

 끝내 이름을 묻지 못했다. ‘네추럴 하르모니아 그로피우스.’ 네 입으로 말하는 게 듣고 싶었어.

 

 처음 사라졌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몇 번 얼굴을 마주쳤고 몇 마디 주고받았다 (주고받았다고 하기엔 서로 자기 할 말만 던지긴 했다). 그뿐이었으니까. 토우코는 울었다. 체렌은 그게 분했던 것 같다. 2년 후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또 사라졌을 때, 체렌도 울었다. 사무치도록 외로웠다. 아무도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만나는 기분이었다. 아주 아팠고, 그리고 마음에 꼭 들었다. 마치 줄곧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고독은 체렌에게 잘 어울렸다.

 

 토우코, N이랑 만났대. 지금은 같이 여행하고 있대. 벨은 생긋 웃었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아니 다들 아무렇지도 않았다. 세 사람만의 유대도 N도 사라졌는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았다. 체렌은 이것이 아주 낯설었다. 그러고 보면 항상 사람에게 가장 예민했던 건 자신이었다.


 그리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치고.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토우코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라이몬의 인파 사이에 섞여 있었다. 그 후로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

 

 배신은 천천히 심장을 좀먹어갔다. 첫날은 아팠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새로운 통증이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즈음 실은 거의 죽었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읽을 수 없었을 때 깨달았다.

 

 체렌은 읽을 수 없는 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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