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작성.

캐릭터가 성범죄를 상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쿠로바스/미도타카쿠로] 쿠로코의 고뇌


테츠야의 마음이 크게 들썩였다. 기뻤기 때문에 괴로웠다. 그래, 괴로웠다. 구제감, 해방감, 연심, 자괴감……. 어느 것을 믿어야 할 지가 영 석연치 않았다. 확연히, 변명감 탓이었다. 합리화도 쉽게, 이것저것 변명감이 너무 많았다. 머리가 살짝 지끈거렸다.

몸을 일으켜서, 테츠야가 유리잔에 물을 가득히 부었다. 흔들거리는 수면에 자기 자신과 그 한심함이 모조리 비쳤다. 그 반대편에는 타카오가 희미하게 비추었다. 한 모금 억지로 들이키고 나서 테츠야는 남은 물을 전부 싱크대에 부어흘렸다. 물이 아깝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 이상으로 기분이 잡쳤다.

커튼을 열어제끼자, 별도 없는 밤하늘에 달만이 혼자만 빛을 발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테츠야가 실소를 흐렸다. 발치에서는 카가미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편안히 잠든 자신의 짗이 너무나도 부러워, 일순간 테츠야는 그 빛을 빼앗고 싶어졌다. 딱 하루만이라도, 카가미가 그림자가 되어준다면 나는 빛이 될 수 있을텐데. 하지만 전부 부지럾는 생각이다. 카가미는 빛, 나는 그림자. 지금도 앞으로도.

만약, 정말로 만약, 내가 빛이었다면? 그랬다면 인연도 조금 더 빛낼 수 있었을까? 테츠야는 자문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만약, 내가 빛이었다면? 그랬다면 타카오도 조금 더 나를 봐주었을까? 마찬가지로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 타카오의 관심이 받고 싶은 걸까? 대답이 확실히 돌아왔따. 너무나도 지나치게 많은 대답의 목소리가 아우성치며 섞여서 무엇이 진심인지 분간해낼 수가 없었다. 그 사람과 있으면 웃고 싶어지고, 오랫동안 안 보면 우울해지고. 항상 있던 곳에 안 보이면 불안해지고, 그 사람이 유난히 차가운 날은 걱정과 함께 공포가 몰려오고.

―여기까지만 생각하자, 테츠야가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었다. 자신의 빛, 옛 동료들, 내 예전 빛의 얼굴을 차례로 관찰하며 애써 신경을 돌리지만, 기적의 슈터와 그 옆에 아름다운 자태로 드러누운 사람의 실루엣에 순간 심장이 멎고,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분명 사랑―연애감정 같은 감정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의 부조개 불안감을 자극한다. 분명 타카오는 누구보다도 아름답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몸의 곡선도, 적당한 근육이 잡힌 늘씬한 몸매도, 밝디밝은 목소리의 음색도, 전부 전부 지구 제일이다. 그리고 특히 그 눈은, 그 매의 눈은 너무나 영롱한 빛을 띠었다. 자신을 보아주는 눈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 아름다운 자태에는 마음을 홀려도 몸이 반응하지를 않는다. 얼굴이 수줍게 빨개지지도, 심장 박동이 빨라지지도 않는다. 언제나의 침묵, 냉정을 고수하는 몸이 유독 거슬린다. 이래서야 확신이 안 서잖아,

그렇게 생각하보면, 타카오와 자신의 성별을 비교해보던 느긋한 나날들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덧없었는지를 테츠야는 깨닫는다. 어차피 그런 건 상관없다. 만일 마음의 확신히 영원히 서지 않는다면, 영원히도 생각해볼 필요가 없는 문제이다.

어느새 테츠야는 무방비하게 잠든 타카오의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얇은 면이불조차 걷어차낸 모습에 머리만은 반응한다. 이대로 이 사람을 해코지한다면 그 흥분감에는 몸도 도취하겠지만, 쿠로코 테츠야에게는 그런 용기도 어리석음도 없다. 

그러던 중 테츠야가 틈새를 포착해냈다. 타카오의 귀에 꽂힌 채 재생을 계속하는 이어폰. 청력에 안 좋다. 운동선수에게 있어서 오감의 상실은 치명적이다. 이것은 그에게 손을 대는 것에 대한 충분한 변명이 될 수 있다. 테츠야는 자신의 자기합리화 능력을 무미건조하게 칭찬해 주었다.

천천히, 테츠야가 손을 뻗어 그 가련한 양 귀에 손을 대었다. 조심스레 이어폰을 제거하는 와중에도 테츠야는 스스로의 심장 박동을 관찰했다. 반드시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뜨거운 가슴의 반응이 작업이 다 끝나도록 오지 않자, 테츠야는 완전히 낙심했다.

머릿속으로만큼은 비틀비틀거리며 간신히 테츠야는 스스로의 잠자리로 돌아왔다. 카가미가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나의 빛, 테츠야는 쓰게 웃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테츠야는 그대로 카가미 위에 곯아떨어진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자제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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