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5


1.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스는 그대로 아오이 아키라의 삶에서 사라졌다.

당연하지 않게 셀렉터 배틀은 다시 한번 시작되었고

전혀 당연하지 않게 잘난 체하는 표정 그대로 인간이 된 피룰루크가 돌아다니기도 했고

배틀에서 좀 졌다고 해서 몸이 손끝부터 사라지는 아주 이상한 일도 있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스는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우라조에 이오나는 썩 담백한 얼굴로 카메라 플래시의 세례를 받고 있었고 진작에 촬영이 끝난 나는 아직 인형탈을 갈아입지 않은 채 턱을 괴고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증오하던 그 이오나는 어디로 간 걸까.

내가 사랑하던 우리스는 어디로 간 걸까.

싫어하는 것은 늘 간단했다. 뭐든 마음에 안 들기는 쉬운 법이니. 이를테면 피룰루크를 싫어했다. 그리고 된통 당하고 더 싫어졌다.

하지만 증오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어쩌면 사랑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 이오나 이상으로 누군가를 증오해본 적도, 우리스 이상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도 없었다. 이오나는 나를 셀렉터로 만들었고 셀렉터가 된 나는 외상을 입었고 우리스를 만났다. 우리스를 만난 나는 아주 러블리해졌고…

당연하단 듯이 아오이 아키라만 빼고 모든 게 없어졌다. 이오나도 셀렉터도 외상도 우리스도 도루묵. 사람은 왜 사는 걸까. 구르고 구른 끝에 원점으로 돌아오는 게 섭리라면 왜 시간은 앞으로 가는 걸까. 산다는 건 죽어가는 일밖에 안 되는 것 아닐까.

이런 침울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우리스 너는 좋아할까.

그런데 나는 아주 잘 살아있어.

만일 우리스가 알게 된다면 기뻐하지 않겠지만,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주 잘 살아있다.


2.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의 손가락, 인간의 머리카락, 인간의 눈과 인간의 혀,

인간의 심장과 인간의 몸무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저 문득 둘러보니, 둘러보는 그것이 인간의 눈이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경로로든 몸을 가지게 된다면 미카게 한나, 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쇼윈도에 비친 얼굴은 그 누구의 모방도 아니었습니다.

나나시, 라고 납득한 이유는, 실은, 몸이 없는 자는 이름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몸과 영혼은 하나라고 믿습니다.  이른바 유물론(唯物論). 사토미 코우 안에 들어간 카니발님이라거나 끈질기게 자신은 카니발, 이라고 하지만 영락없이 사토미 코우이지요. 영혼이란 그런 것입니다. 몸의 일부. 

아무튼 이렇게 되니 당황스럽기가 짝이 없습니다.

한나님, 이렇게 되었는데도 나는 당연하게 나나시인가요?

만나면 물어봐야지. 만나러 갈 수 있다. 아주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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