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23

[69화 이후, 127화 이후 시점. 아마 81화 이후, 118화 주변.]


 인기척을 느낀 신지가 포켓몬을 몬스터볼로 되돌려 넣었다.


 “돌아와, 마뉴라.”


 육신이 입자로 축소되기 직전의 찰나에 포켓몬은 도륵, 눈을 굴려 다가오는 소년을 짧게 쳐다보았다. 마뉴라의 모습은 금세 몬스터볼 속으로 사라졌지만, 붉은 시선은 예리하게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토시는.


 “신지, 신지 맞지?”


 달빛이 가벼운 어두운 밤이었다. 바위 위에 앉아있는 트레이너의 모습도 대략적인 윤곽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신지임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한 정도였다. 알고서도 묻는 말. 신지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사토시는 그의 무시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는, 더욱 다가갔다.


 “이렇게 밤늦게까지 훈련 중인 거야?”


 “그렇다면 어쩔 거지.”


 “역시 신지는 대단하구나. 우리도 분발해야겠어. 그렇지, 피카츄?”


 사토시의 어깨 위에 자리 잡은 포켓몬이 피카, 하고 제 이름을 울렸다. 응, 우리도 힘내자. 지지 말자. 그런 의미가 담겨있을 소리. 몬스터볼에 돌려놓은 포켓몬의 침묵과 대조되는 소리. 사토시는 그런 대조가 늘 의아했다. 왜 그는 모든 것이 자신과 대조되는지. 같은 목표를 가진 포켓몬 트레이너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신지는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과묵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토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신지에게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한 다른 말들을 찾아보았다.


 고집스레 침묵하는 신지의 등 뒤에서부터 물소리가 들려왔다. 신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사토시를 보았다.


 신지는 사실은 고요하지 않았다. 표정을 굳히고 입을 다문 그를 대신해 폭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쏟아지고 있었다.


 “…동료는 버렸냐?”


 “타케시랑 히카리 말이야? 다들 포켓몬 센터에서 쉬고 있는데, 나만 왠지 오늘은 잠이 안 와서 조금 나와봤어. 이거 이제 보니, 신지가 근처에 있어서 그런 건가?”


 “돌아가.”


 “하핫, 여전히 불친절하네.”


―마뉴라!


 신지의 몬스터볼이 멋대로 열리고, 그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마뉴라가 다시 한번 모습을 나타냈다. 마뉴라는 붉은 두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날카로운 손톱을 과시하는 몸짓은 명백히 눈앞의 트레이너와 포켓몬에 대한 위협 내지는 도발이었다.


 “마뉴라, 네게 나오라고 명령한 적은 없을 텐데.”


 소년의 딱딱한 말에, 마뉴라는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 그런 뜻이라는 것을 신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네 마뉴라, 배틀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신지.”


 “지금은 흥미 없어.”


 신지가 다시 한번 몬스터볼의 개폐 스위치를 눌렀다. 마뉴라는 특별히 저항하지 않고 서늘한 웃음을 지은 채 몬스터볼로 되돌아갔다.


 신지는 바위에서 일어섰다. 가볍게 착지해, 사토시를 지나쳐 걸었다. ‘어이, 신지’ 하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머릿속에서 윙윙대는 더 큰 소리에 묻혔다.


「맞아, 사토시 군이 왔어. 그 볼텍커를 쓰는 피카츄 트레이너. 그 애는 재밌네. 마음에 들었어.」


달라져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