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하반기~2012년 초 추정)

 "……와타루."

 진홍색 머리칼이 잔뜩 흐뜨러진 채 실버가 허덕이며 와타루를 노려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금색 눈부터 주홍색 머리칼과 거친 피부까지, 그리고 그의 빌어먹을 성격도 전부, 전부 다. 그가 웃을 때마다 보이는 송곳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웃음은 역겨웠으니까. 그런데도 와타루는 입꼬리를 올린다. 그리고 검지와 엄지를 사용해 실버의 턱을 살짝, 그러나 강렬하게 들어올려 얼굴과 얼굴 사이의 간격을 크게 좁힌다.

 "실버, 많이 지쳐 보이네? 강하지만, 역시 넌 나약한 부류야. 그 옐로였나 하는 녀석처럼."

 "크윽……, 넌 그 옐로한테 당한 녀석 아니냐."

 그쯔음 겨우 버티던 두 다리의 힘이 풀린 실버는 무릎을 꿇은 자세가 되었다.

 "재미있는 자세네. 아, 옐로 그 계집 말이지. 하지만 말야, 너도 인정하고 있잖아?"

 "이…… 입닥쳐."

 "내가 그 때 말했듯이 넌 애정이 너무 부족하잖아? 그 계집은 정이 많은 녀석이었지. 그래서 너보단 강한 거라고.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옐로보다는 못해도…… 너보단 강할지도 모르지."

 "그런 꼴인 주제에 말은 잘 하네?"

 그렇다. 입은 놀리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잘난 게 아니었다. 실버의 뽀얀 피부는 군데군데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상처 안 난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검은 셔츠는 마구 찢겨져 흰 속살을 드러내었다. 와타루는 우세한 상황이었기에 태평하게 있을 수 있었지만, 그 역시 그렇게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완전히 망가진 실버에 비하면 그나마 나았지만, 그 역시 피로 얼룩져있었다. 그런 그는 무게를 가해 실버를 눕혔다. 머리가 땅에 닿자, 붉은 머리칼은 아름답게 퍼졌다. 와타루는 말없이 그의 가슴골을 물어 키스마크를 새겨넣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의 송곳니 때문일 것이다. 와타루는 상처를 입에 문 채로 이빨을 거두고 빨기 시작했다. 실버의 피는 달콤했다. 실버는 증오를 거두지 않은 채 은색 눈으로 와타루를 째려보았다.

 "흐읏……, 떨어져."

 실버가 말하자, 의외로 와타루는 쉽게 떨어져준다. 그리고 가슴골에서 막 떼어낸 입술을 실버의 입술 위에 포갠다.

 그리고 나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바로 떼어낸다. 빨간색 겉옷과 검은 케이프를 두르며 뒤를 돌아보자, 강물로 얼굴의 피를 씻어내는 실버가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 상처도 내지 않았기 때문에 묻은 피를 씻겨낸 그의 얼굴은 다시 본래의 새하얀 색깔을 되찾았다. 와타루는 그가 중국풍의 겉ㅇ소을 걸치고 지퍼를 올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내일, 거기로 찾아와."

 "다시는 갈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짧은 대화를 나눈 뒤 둘은 헤어졌다. 실버는 그 까마귀를, 와타루는 그 용을 사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6시 반의 황혼은 아름다웠다.

 실버,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크리스와 골드와 함께 웃으면서 식사나 하겠지, 하고 와타루는 생각했다.

 다음 날, 무척이나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개의 기술을 사용해가며 실버가 인연의 그 곳을 찾아갔을 때에, 이미 와타루는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타루."

 "마치 9년 전의 그 때 같네?"

 "그래서, 어쩌려고?"

 와타루가 그 물음에 권총을 꺼내었다. 실버는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흐응……."

 실버는 단도를 꺼내들었다. 무기를 꺼내자 무언가 살벌한 분위기가 방을 채웠다. 그다지 좋다고 할 수는 없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둘은 정신력이 강했기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와타루가 무기를 든 채 실버의 입술을 덮쳤다. 그들은 서로 타액을 주고받으며 혀를 놀렸다. 그리고 와타루가 총구를 실버의 등에 갖다대자 실버는 그에 반응한 듯 칼을 바로잡는다. 날카로운 칼날이 파고들자, 와타루의 옷은 붉게 붉게 물들어간다.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매우 위험한 종류였던 총알은 실버의 심장을 관통한다.

 "영원히 재회하지 말자고, 와타루."

 "기꺼이 수락하지."

 피 냄새가 방 안에 진동한다.

 몇 개월 뒤, 바다에서 배 출몰 사고가 일어나, 그 바다는 매우 샅샅히 수색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도 며칠 뒤, 이제는 평범하디평범해진 기사가 나왔다.

 「바다 수색 중, 타살로 추정되는 10대 소년 한 명과 20대 남성 발견」

 아무도 두 사람의 비극을 아는 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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