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4)


 두근, 두근, 두근.

 

 바쿠라의 가느다란 손가락 아래서 그의 맥박이 요동쳤다.

 

 두근, 두근, 두근.

 


 "뼛속까지 날 이용했다고 생각했어? 유감이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용당한 건, 결국 너야.“

 

 두근, 두근, 두근 


 세상이 붉은 고통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감상하며,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두근, 두근, 두근.

Bakura Ryo x Yami Bakura

w. Runtz


 

 위태위태하게 아름다운 남자는 옥상 난간 위에서 휘청거렸다. 두근 두근, 그의 심장이 요동쳤다. 그리고 그가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는 침대 위에서 멀쩡히 눈을 떴다. 언제나 그랬듯, 지겹게도그가 천년 링을 째려보자, 기분 나쁠 정도로 그의 기분과 대조적인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흐하하하! 뭐야, 약해 빠진 숙주 같으니라고!”


 “말 걸지 말아줄래?”

 

 “어리광쟁이 주제에 차갑게 굴기는! 또 죽는 척을 해서까지 이 몸의 관심을 받고 싶었나?”

  

 “착각에도 정도가 있죠. 적당히 해.”


 “뭐야, 뭐야. 요즘 너 이상하게 차갑게 군다?”


 자신의 어둠의 인격의 말을 피식 웃어넘긴 바쿠라는 더 이상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이젠 대답도 안 해주겠다는 거냐. 그렇게 중얼거린 것을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그 역시 대화를 그만두었다 -

  

 “네놈은 절대 죽을 수 없다.”


 - 고 바쿠라가 생각한 찰나, 그가 제멋대로 못박았다. 너무나도 제멋대로인 그 선언을 무시하지 못하고 바쿠라가 간결히 대꾸했다.

  

 “, 언젠간 큰코다칠거야.”

 

 “어이쿠, 그러겠죠.”

  

 거기서 그제서야 대화가 동결났다.

 

 


* * *

 

 


 “저기, 어느 옷이 어울릴까?”

  

 “하아, 그걸 나한테 물어?!”

 

 양 손에 한 개씩 옷걸이를 들곤 천연덕스레 물어오는 숙주가 기가 막혀숙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가 항의하듯 딴지를 걸었다. 그러면 여전히 천연덕스럽게, 숙주가 대답했다.

  

 “. 너는 무지무지 오래 살았을테니까, 그 만큼 많은 패션을 봐왔겠지. 많은 패션을 보아왔다면, 패션센스도 역시 좋지 않으려나?”

  

 “, 넌 뭘 입든 상관 없지 않나? 계집애처럼 이쁘장하게는 생겨먹어가지곤. 그래, 그 계집애 옷 같은 걸로 입어라. 그쪽이 어어울린다.

  

 “그래야겠다. 고마워. 이럴 때만 정말이지 도움 되는 애라니까.”

  

 변덕스럽구먼. 숙객이 중얼거렸다. 세 번째 잠옷 단추를 풀러내며 바쿠라가 웃었다. 무슨 놈이 말도 안 되게 매력있어가지곤. 미워해야 정상인 상대일 터.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가 아주 말도 안 되게 매력있었기 때문에.

  

 “역시 천년 링은 패션의 완성! 이랄까나, 역시 내다버리고 싶은 물건이지만.”

 

 “우와, 굉장한 폭언인데?”

  

 “저기, 너 슬슬 피곤하지 않니? 슬슬 수면시간 아냐?”

  

 “내가 깨어있고자 하기만 하면 그런 건 없어.”

  

 “안타까운 일이네.”

  

 바쿠라가 비이냥거리길 그만두고 구겨신은 운동화를 고쳐신었다. 그럼 슬슬 나가볼까. 현관문이 열리면서 달려있던 차임벨이 서로 부딪치며 우아한 소리를 내었다.

 

 


* * *

 

 


 크리스마스 저녁의 번화가는 북적거렸다. 인파에 섞인 많은 인구 중, 바쿠라 료도 섞여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엔 항상 함께였던 친구들은 어저께  크리스마스 이브날  이미 만나두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홀로 걷던 그였다. 사람들은 곧잘 수려한 생김새의 그를 흘깃흘깃 쳐다보기도 했지만, 거대한 유동인구는 빛나는 그의 존재감조차도 묻어버렸다.


SWEETS

  

 바닥에 쌓인 눈, 아니면 걸음을 멈추는 그 본인과 깔맞춤하듯 하얀 간판 앞에서 바쿠라가 멈추어섰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달콤한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간판이 설명한 그대로 스위츠  달콤한 것들이 가득한 가게이다. 쓸쓸하던 표정의 바쿠라가 금세 미소지었다.


 “맛있겠다.”

  

 쟁반에 슈크림을 얹으며 바쿠라가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또 하나의) 그가 대답했다.

  

 “또 그거냐. 맛도 없는 게 지지리도 달기만 하던데.”

  

 “맛있어. 피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를 뜯어먹고 앉아있는 네 입맛이 이상한 거 아냐?”

  

 스스로와 말을 주고받는 바쿠라에게 따가운 시선이 꽂힌다. 밖에서 보기엔 아무래도 괴상한 언행이 사랑스러운 미모와 겹쳐져 더욱 그런 것이리라. 바쿠라는 가볍게 그것들을 떨쳐버리곤 쟁반을 카운터에 가져갔다.

  

 “슈크림 두 개, 와플 두 개, 마카롱 하나……. 1050엔입니다! 드시고 가세요?”

 

 “.”

  

 잔돈을 찾아 지갑을 뒤적거리는 바쿠라는, 언뜻 보기에 행복해 보였다.

  

 “여기요, 1050.”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층에 자리 없으시면 2층도 이용가능하세요.

  

 “, . 고맙습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묘한 어감이라고 생각하며 바쿠라가 척 봐도 자리가 찬 1층 홀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싹싹한 녀석이로구만.”

 

 “카운터의 여자 아이?”

  

 “아니, 네놈.”

  

 역시나 꽂히는 시선과 대답의 필요성의 무게를 비교한 바쿠라는 대화를 끊고 창가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맛있냐?”

  

 “.”

  

 두 번째 인격이 말을 걸어왔지만, 슈크림을 우물거리는 바쿠라의 반응은 무시일색이었다.

  

 “어이, 정말로 대답 안 해줄 작정이냐?”


 “.”

  

 “재미없게시리 말이야. , 자러 간다.”

  

 두근, 두근, 두근.

 

 “.”

 바쿠라가 틈을 놓치지 않고 불현듯 나이프를 쥐어들었다. 무게를 실어 나이프를 다른 쪽 손목을 향해 내리찍으려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시야가 일그러졌다. 동시에 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숙주 놈이 죽어버릴까봐 눈 좀 붙이기도 힘들다니까.”


바쿠라가 투덜거리고 있었다.

 

* * *

 

 


 두근, 두근, 두근.

  

 바쿠라의 가느다란 손가락 아래서 그의 맥박이 요동쳤다.

  

 두근, 두근, 두근.

  

 "으윽."

  

 또 하나의 인격을 밀어내느라 잠시 역겨워하던 바쿠라가 이내 냉소지었다. 힘겹게 큰 숨을 들이키고, 그가 모기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둠 인격아, 들리니? 마지막으로 너와 대화하고 싶은데.“

  

 우습다는 듯, 비웃으며 또 하나의 그는 대답했다.

  

 “? 마지막? 웃기지 마라.”


 그러나 몸의 주도권을 지킨 채 바쿠라가 말했다.

  

 "어머, 인격을 바꾸시게? 내가 죽는 게 아니꼽니? 어차피 네게 난 어찌되어도 좋은 존재잖아? , 역시 생존을 위해 숙주가 

필요하겠구나. 그런데 잊지 말아줬음 해 - 내가 주인격이고,  숙객일 뿐이야. 넘겨주기 싫으면 내 몸은 내 거야. 찌그러져 있으란 말야.“

  

 신랄한 연설은 계속되었다.

  

 “그거 알고 있니? 넌 이용가치가 다 해서 죽는거야. 혹시 지금 귀를 의심하고 있다면 맞게 들은 게 맞아. 넌 이용가치가 다 해서 죽은거야.

  

 이제와서 웃기겠지만 말이야, 나는 네가 있어 행복했어.

  

 난 내가 너무나도 무가치했어. 의미 없는 나날이었어. 당장 죽어버려도 이상할 것 없을 만큼, , 인류의 낭비, 쓰레기였다고!

  

 그런데 널 만난거야. , 나를 이용하고 유린했지. 내 동료들이 상처입어 가는 건 결코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거랑은 또 별개로 네가 있어 기뻤어. 너는, 내게, 존재의의를 줬어.

  

 , 그런 바보 같은 자기만족도 이젠 필요없으니 죽어버리겠어. 너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뼛속까지 날 이용했다고 생각했어?유감이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용당한 건, 결국 너야."

  

 바쿠라가 스스로의 목을 조르던 손을 내렸다. 곱게 웃으며, 그가 스스로와 또 하나의 스스로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널 위해 한 가지 해줄게.

  

 어떻게 죽는 내가 보고 싶니? 말해봐, 얼른. 원하는 대로 해줄게. 뭐든 말이야. 유명한 자살, 1974년의 드릴 자살이나 1983년의 냉장고 자살 같은 것도 있었지."

  

 두근, 두근, 두근.

  

 대답을 기다리며 설레였다.

  

 “어이!”

  

 조금의 정적이 흐르니 그제서야 어둠의 인격이 말하기 시작했다. 바쿠라는 화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만둬라. 죽기 직전에 질질 짜봐야 되돌릴 수 없게 된다고! 생각을 좀 해 보란 말야!”

  

 "뭐야. 이제와서 상냥한 상식인인 척 해도 말이지, 이미 넌 스스로가 어떤 놈인지 증명했다고? 그런 거,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만 토해내는 위선이잖아? 안 속아. 날 어떤 식으로 죽이고 싶어, 그리고 어떤 식으로 넌 죽고 싶니. 그걸 대답하라고.“

  

 바쿠라(숙객)이 고민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그는 대답했고, 걸린 시간에 비해서는 굉장히 실망스러운 대답이었음에도 바쿠

(숙주)는 수긍해주기로 했다.

  

 “집행유예. 애원하마. 내 평생의 부탁이다.”

  

 “좋아.”

 

 


* * *

 

 


 “천년 링?”

  

 바쿠라가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비었다. 상쾌한 공기가 맨살에 닿고 있었다. 가벼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없었다.


 “그랬었던가.”

  

 바쿠라는 석판에 끼워지던 천년 아이템들, 천년 링을 기억했다. 무너져내리던 신전을 기억했다. 이별한 것인가. 또 하나의 유우기와, 또 하나의 나와, 고대의 영혼들과. 성가셨던 그는 이제 없다.


 두근, 두근, 두근.

  

 바쿠라가 웃었다. 완벽한 기쁨으로부터의 웃음이었다. 슬프리만치 자연스러웠던 이해나 행복의 부재에, 더 이상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전혀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현세에는 더 이상 자신을 붙들어둘 사람이 없었다. 드디어 그리운 얼굴들은 전부 명계에 모인 것이다. 남은 과제는 너무나도 명확하고 간단했다. 망설일 필요 없이, 이제 명계로 건너가면 된다.

  

 선혈을 두르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너와 재회할게.

  

 두근, 두근, 두근.

  

 바쿠라가 선반에서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꺼내었다. 공항에서 아버지가 사다주신 물건이었다. 순수하게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 바쿠라는 더 이상 구애받지 않았다. 바쿠라가 오덕五德 나이프의 메인 기능이기도 한 칼을 꺼내어 가볍게 자신의 목의 경동맥을 그었다. 세상이 붉은 고통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감상하며,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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