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8)

 

 사형


 하얗게, 하얗게. 천사처럼 내려왔던 니아의 첫 이미지를 기억했다. 구름 같은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와 다만 우주를 담은 듯 두 눈만은 새카맸다.
 그때부터 니아가 싫었다. 천상의 존재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를 격하시키고 싶었다. 성적을 흐트러뜨리고 얼굴을 선명한 표정으로 물들이고 일그러뜨리고 싶었다. 질투와 증오는 가속했다. 니아를 발치에 무릎 꿇게 하고 발등을 핥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질투의 이야기는 결국 시시껄렁하다.
 인생이 통째로 니아의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읽어왔던 책들과,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뛰었던 축구 게임들, 언젠가부터 혼자 먹었던 급식, 들여다봤던 흰 모니터에 찍힌 cloister black 폰트의 L이라는 글자와 귀에 꽂혔던 변조된 목소리와, 지나간 겨울 봄 여름 가을은 이윽고 공전 아홉 바퀴만큼 쌓였고.

 그러나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야.
 열등감이, 분함이 목 끝까지 차올라서 울었던 어느 날 니아는 고요하게 말했었다.
 그것은 사실이었고 그 슬프리만치 만들어진 세계의 제왕이 니아였다. 멜로에게 있어서는. 모두의 우상인 L도, 위대한 아버지 되는 와미도 아니었다. 오직 니아. 멜로에게 있어서는 오직 니아였다.

 그리고 좁은 세계는 연극의 막이 내리듯 종말을 고한다.

 의자 두 개가 있는 지하실에서
 지금, 가족은 끝납니다¹

 니아는 내내 지나치게 다소곳하게 앉은 모습이다. 멜로가 오른팔을 들었다. 니아의 머리통은 상상했던 만큼 푹신했다.

 싫어요.
 떨림 없는 목소리.

 멜로는 소리 없이 자조했다. 우리는 이제 시시한 경쟁조차 못 하게 되었어. 우리는 겉으로는 추앙받았지만 결국 조종당할 뿐이라서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지.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었다.

 곧은 목소리가 철벽에 반향했다:
 "나를 봐주세요, 멜로. 내가 멜로를 볼 수 있게 해주세요."

 멜로가 흠칫했다. 천천히 니아가 돌았다. 천천히. 달이 차듯이 니아의 얼굴은 천천히 드러났다. 구름 같은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와 우주를 담은 듯 새카만 두 눈. 아직 어린, 조그마한 이목구비. 지나치게 작게 느껴지는. 아니, 그 반대다. 여태까지 소년은 실제에 비해 지나치게 커 보였다.

 천천히 그가 입을 벌렸다. 우주가 벌어지듯이. 입이 벌려진 너비만큼 새카만 우주가 보였다. 그것은 천천히 점점 확장해갔다. 입을 크게. 벌렸다. 그 안은 새카맸다.
 우주의 입구에 총을 쑤셔 넣었다. 니아의 입은 정말 꼭 우주처럼 저항 없이 두꺼운 총구를 받아들이고 삼켰다. 우리의 마지막 소원은 이루어졌어. 그러니까 하나, 둘,

 셋.

 파열했다.

 천사의 잔해라고 할 만한 것은 그저 지극히 새빨간 부서진 송장이었다. 그것은 하얗지도 않았고 이름도 없었다.


역시 감정적인 글을 쓰는 것은 특기가 아니라고 느끼지만 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종종 도전하게 되어요.
학교 영어 시간에 <생쥐와 인간>을 읽었습니다. 누가 누굴 죽이든간에 멜로랑 니아가 서로 죽이는 걸 보고 싶어져서 썼습니다.

₁송승언, 이파티예프로 돌아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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