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2)

암리타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0.
기라티나의 세계는 깨어져있다. 기라티나는 일그러짐의 수호자다. 앞면과 뒷면, 빛과 그림자ㅡ모든 숨는 것들이 기라티나의 아래에 집결한다. 깨어진 세계에는 빛도 역사도 없지만 기라티나는 기억한다. 빛. 그것은 자신과 세계의 오욕을 전부 자신에게 뒤집어씌웠던 아버지의 환함. 비틀린 시간축에서 과거로 남겨지지 못하는 사건이다.



1.
ㅡ아버지 저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습니까


2.
소녀는 기라티나를 찾아온다. 빛이 가득한 사랑스러운 아이. 표면의 세계가 숨긴 모든 어둠의 집결지, 깨어진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 깨어진 세계에 있어서는 안될 아이. 표면 세계의 축복, 깨어진 세계의 재앙. 그럼에도 소녀는 기라티나를 찾아온다.


기라티나의 유일한 광원, 태초의 빛이었던 아르세우스 뿐이었던 빛은 그 정의를 소녀만큼 확장한다.


소녀는 어느덧 깨어진 세계의 중력법칙에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3.
ㅡ암리타를 알아?


소녀의 말이다. 그 맑은 울림이 깨어진 세계의 공허 속에서 메아리친다.


ㅡ저번에 봉신마을에서 들은건데, 신들이 마시는 꿀이래.


ㅡ기라티나는 신이잖아?


우주 모든 치욕의 신


ㅡ암리타, 마셔본 적 있어?


기라티나가 고개를 저어 소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의사를 표명한다. 아버지는 기라티나에게 달콤함을 부여하지 않았다. 오로지 칠흑, 칠흑, 칠흑만이.


ㅡ그렇구나


ㅡ그치만 괜찮아! 왜냐면 암리타는 말이야, 입으로 암리타, 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대.


암 리 타


ㅡ자, 기라티나도 말해봐


4.
소녀는 오류ㅡ지나치게 우월한 실패작이다. 그는 한 때 표면 세계의 축복이었지만 그가 낳은 뒤틀림의 크기는 그가 지닌 빛의 크기를 추월하기에 이른다.


생명을 낳고 죽음을 부여하는 것은 오롯이 신의 권한.


아르세우스는 명했고 기라티나의 충성은 늘 죄를 한몸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라티나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빛이고 그의 사랑은 늘 죄를 통하여 성사한다. 기라티나가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와 소녀. 그의 우주의 모든 빛. 기라티나가 소녀를 사랑하는 방법과 아버지의 명은 일맥상통한다. 아버지가 명하는 죄를 삼키고 죄를 낳는 소녀를 단죄하는 것 모두가 기라티나의 사랑이다. 아버지가 주시는 절망도 모두 사랑하고 기라티나에게는 영겁의 절망 뿐이다.


5.
기라티나는 소녀의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진득한 붉은 꿀을 뒤집어썼다. 암리타. 기라티나가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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