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2)

광휘 군은 빛나 양과 절친하다고 들었는데, 빛나 양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나요?


 그녀는 구 년 전 첫 포켓몬을 받고 여행을 떠났어요. 그녀가 팽도리를 골랐던 그 순간에 나는 바로 옆에서 그걸 보고 있었죠. 그녀만큼 총명한 팽도리였고 그녀도 그녀에게 포켓몬 도감을 건네었던 마박사도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희망에 가득 차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성공하고 우리는 행복할 거라고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여행은 아주 멋졌어요. 우리가 열 살이 될 때까지 시간을 썩히느라 읽어왔던 소설들과 보아왔던 영화들 그 어느 것도 그녀의 여행만큼 스펙타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빠르게 성장했고 모든 배지를 따기는 물론 콘테스트를 제패하거나 갤럭시단이라고 이름 붙여진 해괴한 악의 집단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실은 열 살짜리 소년소녀에게 맡기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참혹한 임무였지만 그녀도 포켓몬도 강했습니다 신오지방의 그 누구보다도 강했습니다. 오지랖이 넓은 그녀의 꽃향기마을에서의 (그녀는 그곳에서 일생의 파트너가 될 꼬몽울을 잡기도 했습니다) 사사로운 참견은 그녀와 갤럭시단의 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천관산 정상에서 그녀는 시간의 신과 손을 잡고 악의 보스를 물리쳐 세상을 구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세상을 구한 히어로가 되었고 그 이후로 금방 여덟 번째 배지를 손에 넣고 사천왕, 그리고 챔피언도 넘어선 그녀는 지구의 은인, 그리고 신오지방의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행운이 꽃피고 우리는 실로 행복했습니다. 그런 과분한 것은 달라고 한 적도 없건마는, 우리에게 한순간에 그렇게 많은 것을 주었던 신은 또 한순간에 모든 것을 되 앗아갔습니다.


 그녀는 화려하게 여행하고 화려하게 배틀하다가 종종 오박사로부터 받은 포케트레를 만지작거리며 휴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명성은 차츰 잦아들었고 포케트레를 들고 풀숲을 거니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관심도 여유도 즐길 줄 아는 유연하고 튼튼한 아이였죠. 그녀는 배틀을 하고 포핀을 만들고 드레스를 입고 포케트레를 돌리고 포켓몬을 만나고 쓰다듬고 안고 키스하고 사랑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엠페르트와 로즈레이드가 모든 낮과 모든 밤에 그녀를 지켰고 사람을 생각하면 고향에 어머니가, 배틀타워 앞에서 반겨주는 용식이가, (부끄러워서 안 그런 체하기는 했지만) 항상 기다리고 있는 내가 있었습니다. 일상의 행복을 잊지 않는 빛나는 평생 행복할 자격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누가 감히 신오 챔피언, 세계의 구세주인 그녀를 건드렸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미제 사건이라는 건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녀를 제물로 PC 박스 보관 시스템의 취약점이 처음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어모으게 되지요. 이수진은 말합니다. ‘데이터 손실’. 그렇게 그녀는 삼 년간 자기 자신보다도 그리고 세상의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두 마리의 포켓몬을 비롯하여 열아홉 마리의 포켓몬을 유실합니다. 개중에는 그녀가 아끼던 천공의 신 레쿠쟈나 초록색 동미러, 은색 배루키와 같은 귀한 포켓몬도 있었지만 그녀가 가장 가슴 아파한 소실은 엠페르트와 로즈레이드 두 마리였습니다. 공허한 그녀의 박스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브케인만이 몇 마리 나뒹굴고 있었지요.


 그녀의 행복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그녀는 본래 매사에 긍정적이어서 궁지에 몰려도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그 사건은 그녀를 너무나도 철저히 부러뜨렸습니다. 그녀는 마음을 잃어버려 더는 일말의 행복도 느끼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던 그녀는, 가엾은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신의 축복도 닿지 않을 만큼 철저한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그녀는 여행자에서 방랑자가 되었습니다. 더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숨 쉬는 것이 부끄러워 어찌 어머니를 만나겠느냐고 합니다. 그녀가 부끄러울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는 데 말입니다. 포켓몬을 떠나 인간에게로 돌아오지를 못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배틀도 하지 않고 포핀도 만들지 않고 드레스를 입지도 포켓몬을 만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PC 보관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판도라의 상자 그 밑바닥에도 희망은 남아있었습니다. 아직 따뜻한 알 네 개. 그녀는 가슴에 그것들을 하나씩 품고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파릇파릇한 녹색의 로젤리아가 네 마리 태어난 것입니다. 로젤리아는 울음소리가 웃음소리인 포켓몬입니다. 그것들이 태어나면서 꺄르르 웃던 소리를, 그걸 듣고 빛나는 일련의 사건 이후 처음으로 웃었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하지만 웃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배틀도 하지 않고 드레스를 입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울지도 웃지도 않던 그녀의 얼굴에 표정이 서서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로젤리아에게 먹일 포핀을 만드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또 얼마 후에는 포케트레를 켜고 로젤리아와 함께 풀숲을 거니는 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잘 웃는 사람은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로젤리아가 포핀을 먹고 기뻐할 때나 특별한 색의 포켓몬과 조우할 때 가끔 환하게 웃어요. 포핀은 먹여놓고 콘테스트는 나가지 않지만.그녀가 웃으니까 뭐 어때요.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 갈색 찌르꼬를 안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도 다행인겁니다. , 또 로젤리아 한 마리는 칼로스지방의 재능 넘치는 신참 트레이너에게 맡겼는데, 최근 뉴스에서 그 애가 로즈레이드를 데리고 포켓몬 월드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했다는 소식이 들렸지요. 그걸 듣고 빛나가 또 웃었어요. 환하게. 그래서 나도 다시 행복하기 시작할 것 같았는데…….


 별안간 죽어버렸어요. 천관산에서 뛰어내려버렸어. 하하, 다른 지방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관동 챔피언 레드도 은빛산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던가? 똑같이 돼버렸어…….

 

 

 

 

 

포켓몬의 권위자 마박사 님의 조수이자 손자인 광휘(19)군이30일 새벽 202번도로 부근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포켓몬에 의한 자살로……


 

용식은 TV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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