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14)

“우승 축하해, 하리.”


코가네시티 콘테스트홀은 막 끝난 콘테스트의 여파로 아직 뜨거웠다. 환호와, 드문드문 일찍 탈락한 참가자들의 푸념이나 오열, 온갖 소음 사이에서 사오리가 하리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방금 리본을 수여한 코가네대회 우승자와 호연 그랜드 페스티벌 우승자가 대화한다. 그 광경에 군중이 크게 술렁거렸다.


“어머, 사오리, 땡큐. 이게 얼마 만이니?”

“잘 지냈어?”

“그럭저럭.”


지극히 하리의 취향에 맞추어 꽃다발의 장미는 이미 다 시들어있다. 하리는 시든 장미를 한 손으로 채가듯 가져가며 한 손으로는 머리를 넘겼다. 매일 고심해서 손질하는 머리카락은 완벽한 모양새로 휱날렸다. 하리는 흡족했다.


“달링은 잘 지냈어?”


달링. 자극적인 단어 선정에 군중이 또 수군거렸다. 내일 신문에는 하리와 사오리의 열애설이 1면에 실릴 것이다. 물론 사실무근이다. 하리는 생각 없이 말을 뱉는 사람이었다.


“그래, 나도 그럭저럭.”

“근처에 좋은 바가 있던데, 같이 안 갈래? 앉아서 와인이라도 한 잔 하면서 천천히 얘기하자구.”


하리가 사오리의 손목을 낚아챘다. 약간 아플 정도였지만 사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코가네시티 콘테스트회장에서 끌려나오며 사오리는 눈앞에서 넘실거리는 결이 고운 보라색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하리가 그녀를 데리고 온 곳은 록 음악이 시끄러운 장소였다. 적어도 사오리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사오리는 늘 재즈 취향이었고, 하리는 늘 그런 음악은 따분하다고 칭얼거렸다. 사오리는 <님바사>를, 하리는 <러스티 클레피>를 주문했다.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한 소녀 바텐더가 셰이커를 흔들었다.


“그간 리본은 몇 개나 땄어?”

“나?”


하리가 자랑스럽게 리본케이스를 꺼내보였다. 뚜껑을 열자 네 개의 리본이 반짝거렸다. 매일같이 닦아줘가면서 성실하게 관리한 결과로 특별한 광택이었다.


“네 개.”

“정말로 대단하구나, 하리. 이런 때에도 리본을 따다니.”

약간의 존경, 그리고 노골적인 책망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하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꼬맹이들이랑 내 콘테스트는 무슨 상관인데!”

“그래, 그런 점이 대단하다고.”


사오리가 위스키를 들이켰다. 하리의 눈을 들여다보면 사오리가 비칠 뿐 그의 마음은 읽을 수가 없었다. 원래 이렇게 공과 사가 철저한 사람이었던가. 그래도 절친했던 아이들의 안부조차 물어볼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은 얄미울 지경이었다. 사오리가 하다못해 먼저 말을 꺼냈다.


“슈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아.”

“그래? 난 예전부터 그 꼬맹이가 마음에 안 들었어.”


하리가 성급하게 잔을 들었다. 적갈색 <러스티 클레피>가 약간 넘쳐 옷을 적시자, 하리는 신경질적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사오리가 답답한 마음으로 그의 한심한 언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리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너는 내가 울어주기라도 바라는거니?”

“.......”

“아니면 뭐, 내가 가서 그 소년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기라도 하라고?”

“...그래, 네가 그렇게 해줬으면 참 좋겠다.”

“야, 사오리, 울어?”


사오리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님바사>의 수면 위로 눈물이 딱 한 방울 떨어졌다.


“너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걔한테 아무 관심도 없어.”


하리가 잔을 비웠다.


“그래, 그럼, 네가 듣고 싶은 얘기나 좀 해보자. 카모쨩은 잘 지내고?”


카모쨩? 아.


“하루카 말이구나. 그 앤……”

“다음 콘테스트에도 안 나와?”

“토우카시티의 온실에서 몇 달째 은신하고 있으니까…, 아마 그렇겠지.”

“온실? 남친이랑 같이?”


사오리는 실소했다.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그럴 리가.”


이어서 사오리도 잔을 비웠다. 차라리, 하리 말대로였다면 좋았을텐데. 사오리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슈를 떠올렸다. 참혹했다. 귀공자라고 불리우던 소년의 얼굴은 거무튀튀하게 그늘이 드리웠고 그가 항상 긴 소매로 숨겼던 팔목에는 길게, 하얗게 흉터가 있었다. 소년은 예로부터 극단적인 성격이었다. 그는 예민했고, 프라이드가 높았다. 그런 그에게 코디네이터ㅡ연예인ㅡ는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첫눈에는 유약한 인상이었던 소녀는 성격이 유연해 각종 가십, 몰려오는 리포터들, 철없는 여자아이들(슈의 광팬)의 저주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오로지 콘테스트를 계속했다. 그러나 소년이 썩어문드러지고, 소년을 사랑했던 소녀는 그와 함께 추락했다. 소녀가 사랑했던 소년의 상처는 그대로 소녀 자신의 상처였다. 슈는 아무도 모르는 엔쥬시티의 작은 여관집 방구석에 처박혀 그저 멸망해가고 있었고, 소녀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 소유의 온실에서 포켓몬과 지내며 사람과의 접촉을 거부했다.


둘과 함께 여행길을 떠났던 하리는? 슈와 하루카가 급속도로 망가져가는 동안?


네 개.


사오리는 그만 울 것만 같았다.


“너는 그 애들한테 느껴지는 게 없어?”


사오리가 하리를 노려봤다. 하리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없어. 콘테스트에도 못 나오는 코디네이터 따위한테는 아무 관심도 없어.”


하리는 무척이나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그는 일생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두 코디네이터를 잃었다.


ㅡ내가 관심이 있는 건


하리는 허리를 숙여 머리카락도 얼굴도 눈도 입술도 빨간 여자에게 입을 맞추었다. 몹시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ㅡ이제 사오리밖에 없어.


사오리는 좁은 테이블 위에 동그랗게 엎드려 조용히 흐느꼈다. 하리는 오직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한 번, 카운터를 한 번 흘겨보더니 테이블 위에 지폐 두 장을 쾅 내려놓고는 홀로 장소를 빠져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리는 편의점에서 우산을 두 개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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