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3)


 엔쥬시티의 짐리더가 죽었대.


 그거 정말이야? 응, 고스트는 역시 불길해, 그치? 세상에… 고스트한테 살해당한거야? 아니, 그건 아니래. 그럼? 사람한테. ...난 고스트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것 같아. 그치만 그 사람, 살해당하기 전부터 이미 이상해져 있었대. 그건 역시 고스트의 짓이 아닐까? 무서워…


 그만해. 미나키는 토할 것 같았다. 일부러 들리도록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소문은 삽시간에 야마부키 시티까지 퍼졌다.


 다시는 스이쿤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스이쿤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 앞에서만 나타난다고 전해지니까. 소년 시절부터 가져왔던 길고도 달콤한 꿈이었다. 아니, 현실이었다. 스이쿤만이 자신의 현실이었다. 하나의 현실로부터 죽음을 경험하고 또 하나의 현실로. 아니, 이제부터야말로 꿈을 꿔야할지도 모른다.


가장 마주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마츠바.


 

*  *  *


 

 “뭐라고?”


 “미나키, 그건 못 들었다는 뜻, 아니면 못 들은 척 해주겠다는 뜻?”


 마츠바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미나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반복했다.


 며칠 전에. 세키치쿠의. 안즈랑. 했어.


 “...마츠바, 이건 자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자제할 생각이 없는거지?”

 “그 말대로야.”


 미나키가 이마를 짚었다.


 “어이, 마츠바. 안즈는”

 “12살이라고. 그걸 말하고 싶은거지?”

 “키요우가 이걸 알면...”

 “하? 키요우가 무슨 상관이야.”

 “그래, 그건 네 말이 맞아. 키요우는 관련 없지. 이건 네 자신의 양심에 대힌 얘기라고! 네가 구제불능인 건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지킬 건 지켜, 제발 좀!”


 “.......”


무언가 대답하려던 듯한 마츠바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져갔다.

 

“마츠바?”


 그는 이따금씩 대화하던 중에도 갑자기 멍해지곤 했다. 그것이 매번 그가 보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보고 있는 순간들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스스로를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자라고 소개했다. 미나키는 그를 잠시 기다린 뒤 조용히 물었다.

“...뭘 봤어?”

“모르겠어…. 거므스름한 것들. 아마 유령… 악령이겠지..”

나 참, 내가 만만해보이는건지. 그가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유령이 보이는 사람은 극히 적기 때문에 유령들은 모두 절실했다고 그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후우, 피곤한 것들이라니까.”


“...마츠바, 얘기 도중이었는데 말이지.”

“그래, 그래.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더라?”

“......피임은 제대로 했어?”


 미나키의 말에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을 일이 아니야! 미나키가 정색하며 소리쳤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했을 것 같아?”

“나는 걱정돼.”

“했을 리 없으니까.”


어이, 마츠바! 미나키가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마츠바는 슬쩍 웃고는 미나키를 가까이 끌어당겨, 귀에 속삭였다.


괜찮아.


그리고는 귀끝부터 콧등까지 새빨개진 그를 밀어내 거리를 두고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불임이니까, 난.”


마츠바의 솔직한 말에 문득 울적해진 미나키는 밝은 표정을 짓고 말했다.


“...호우오우는 올바른 마음을 가진 트레이너 앞에만 나타난다고 하던데.”

“제기랄. 그럼 넌 스이쿤이 좋아하는 깨끗한 마음을 가졌고?”


그가 키득거렸다.

“적어도 너보다는.”


 

*  *  *


 

“젠장! 또 놓쳤어.”


미나키가 흙바닥에 얕게 찍힌 발자국을 노려봤다. 의심의 여지 없이 스이쿤의 발자국이었다. 가뿐한 발걸음으로 날듯이 우아하게 뛰는 스이쿤은 아주 옅은 흔적만을 남겼다.


“나는 십수년째 너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너는 그리도 내가 싫은거냐.”


익숙한 거리의 풍경. 멀리까지 들려오는 전통 음악.


“...아니면 날 엔쥬시티로 인도한건가, 스이쿤?”


“어서와, 미나키. 스이쿤은 잡았어?”

“그럴 리 없잖아.”

“머물다 갈거야?”


질문이었다. 마츠바는 부탁하지 않았지만 미나키는 거절할 수 없었다.


“몇주일만. 잠시 쉬면서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스이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나도 항상 호우오우에게 기도하고 있지만, 역시 넌 평생 스이쿤은 못 잡을 것 같은데.”

“...다른 데 가서 쉴까.”


하하하, 농담이야. 그가 마르게 웃었다. 느긋하게 있다 가. 이 계절의 엔쥬시티는 가장 아름다우니까.


“오래 있다 가.”


목소리가 거칠었다. 긴 소매 옷과 목도리로 평소보다 야윈 몸을 가리고 있다는 걸 미나키는 알 수 없었다.


마츠바는 미나키를 집으로 초대했다. 주로 엔쥬 짐에서 만났기 때문에 미나키가 그의 집을 방문한 것은 제법 오랜만의 일이었다. 평범한 엔쥬시티식 가옥이었지만 구석구석에 녹아든 그의 향기가 좋았다. 곳곳에 붙여진 부적의 갯수는 눈대중으로 보아도 저번보다 상당히 많아진 갯수였다. 전부 그가 직접 오린 종이에 붓에 먹을 묻혀 쓰고 그려서 만들어졌다. 미나키의 망토 안쪽에도 한 장이 붙어있었다. 앉아. 그가 1인용으로 보이는 좁은 코타츠를 가리켰다. 미나키가 착석하자 그는 저벅저벅 부엌에 가서 선반을 뒤적거렸다. 컵 두 개와 작은 통을 꺼냈다. 미리 가스렌지에 올려져있던 주전자를 집어들어 물을 부었다. 물줄기가 스테인레스에 부딪히는 소리가 청량했다. 그리고 가스렌지에 다시 주전자를 올리고, 불을 켰다. 그는 센 불을 애용했다. 얼마 안 지나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미나키는 눈을 감았다.

딸깍, 마츠바는 불을 껐다. 물소리가 멈췄다.


“나도 집에는 자주 안 오니까 별로 대접할 게 없네. 녹차라도 가져왔어.”


그는 단풍이 그려진 쟁반에 티백을 담근 주전자와 컵 두 개를 내왔다.


“충분해, 마츠바.”


그가 다가와 미나키의 맞은편에 앉았다.

컵을 양손으로 감싸드니 따뜻함이 미나키의 뼈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호호 불어서 식힌 다음 조심스럽게 한 모금 들이켰다. 뜨끈한 물이 혀에서부터 목으로 넘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평범한 녹차였지만 맛있었다.

마츠바의 컵에서도 김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는 냉수를 마시듯 차를 넘기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음식은 항상 지나치게 달거나, 짜거나, 시거나, 매웠다.. 그는 모든 것을 일반인보다 덜하게 느꼈다.


“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엔쥬 짐에서 보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나키는 물었다. 마츠바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츠메랑 헤어졌어.”

“최근에? …..난 한참 전에 헤어진 줄 알았는데.”

“왜?”


고개를 갸웃하는 그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연애는 한 사람만 바라보면서 하는 거니까.”

너, 봄에는 안즈랑 했었잖아. 미나키가 한숨지었다.


“연애라.”


자연스럽게 헤어졌다고 표현했으면서도 지나간 것을 연애라 표현하는 데에는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야?”


“나츠메는 날 이해해.”

“그런 식으로 어리광부리니까…”

“그런 의미가 아냐, 미나키.”


마츠바가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그러고보면 야마부키 시티의 짐리더는 미래를 본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모든 걸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츠메를 말하는 것이었을까,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을까.


“그치만 끝까지 이해해주지는 못했으니까...  헤어지게 됐어.”


당연하지 않게 들리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초능력과 영능력은 닮은 것 같아도 전혀 별개니까… 어쩔 수 없지.”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는 영능력을 가졌다. 그는 몇번인가 미나키에게 자신에게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미나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 뿐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경청하던 미나키도 알 수 없는 설명에 점차 질려갔고, 언젠가부터 그는 자신에게 보이는 것들을 미나키에게 묘사하는 것을 그만뒀다. 자신이 들어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야마부키 시티의 나츠메가 대신 들어주게 되었다는 것--그리고 그녀는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미나키는 무척이나 안심했었다.


“......내가 들을게.”

“응?”

“네 얘기. 들은지 하도 오래돼서 다시 궁금해졌다.”


그의 탁한 자안이 미나키를 응시했다. 그가 빙긋 웃었다. 그는 죽은 듯이 웃었다.


“고마워, 미나키.”


그리고 그는 말하기 시작했다. 에피를 쓰는 무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코가네시티의 아카네와 포케슬론에 대해서, 타마무시시티의 에리카에게 받은 꽃이 시든 것에 대해서, 카스미의 짐이 있는 하나다시티의 동굴에 대한 전설에 대해서, 호우오우에 대해서, 그리고 스이쿤에 대해서 얘기했다. 시온타운에 라디오탑이 생기기 전에 있었던 포켓몬타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유령에 대한 소재가 나왔지만 그는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마츠바는 방이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가 잠들지 못했기 때문에 미나키는 아침이 될 때까지 그와 함께 밤을 샜다. 미나키가 내내 깨어있었다는 걸 몰랐던 마츠바는 밤새 경독에 떨었다.


 

*  *  *


 

미나키는 마츠바를 존중했다. 가장 친한 친구인 그가 자신에게 아주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숨김없는 사람으로 남아있기를 택했다. 그를 추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과자를 사러 나갔다가 들어왔을 때 집에 남아있던 그가 내내 검은 소매로 가리고 있었던 손목이 너무나도 붉어지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 미나키는 외면할 수 없었다. 미나키의 손에 힘이 풀리고 과자가 든 비닐봉지가 중력에 눌려 바닥에 툭 떨어졌다. 과자가 흘렀다.


마츠바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현관에 굳어있는 미나키를 돌아보았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그가 꺼낸 말은 단순했다.


“어서와.”


“......뭘 한거야, 너.”

“아, 미안. 놀래킬 생각은 없었는데.”


부적도 너무 많이 붙이면 체력소모가 심하니까 임시방편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어. 그는 단조롭게 설명했다. 미나키는 그의 말을 어디까지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했다. 강렬한 남새가 코를 찔러서 생각이 잘 되지를 않았다.


“보기엔 꼴사납겠지만, 이러면 안 들리거든. 소리가.”


그렇게 말하며 마츠바가 한번 더 손목을 그었을 때, 미나키는 비명을 질렀다. 제발 그만해!


그는 키득키득 좀먹혀들어가듯 웃었다. 미나키는 웃을 수가 없었다.


“진정해, 미나키. 죽지는 않으니까.”

“......뭐가 들리길래 그래. 나한테 말해봐.”


마츠바는 또 웃고 있었다. 이번엔 곤란하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여러가지… 정말 여러가지.”


운을 띄우며 그가 칼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미나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악령이야?”

“...아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지.”


그가 눈을 가렸다. 자해한 손목이 닿은 턱 주변에도 묽은 피가 묻었다.  나더러 어떡하라고… 그는 아주 희미하게 중얼거렸지만 미나키는 들었다.


“안 들어도 돼. 네가 무슨 정의의 히어로도 아니고.”

“듣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도 끊임없이 들려와….”

“마츠바……”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고 행동하던 그가 풀죽은 채 웅크린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미나키는 일순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들어주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했건마는 상상 이상으로 듣기 괴로웠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기에.

“미나키, 난 피곤해 죽을 것 같아.”

그의 목소리가 울먹거렸지만 그는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그는 매 순간 너무나도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동시에 너무나도 혼자였다.

“항상 보여. 항상. 잠든 뒤에도, 깨어난 직후에도.”

“…….”

“넌 절대 모를거야.”

알 필요도 없고. 그는 버릇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그치만 열중하고 있을 때만큼은 안 보이니까.”

그가 식칼을 눈짓했다. 미나키의 마음이 찢어졌다.

“배틀할 때나, 그 외에도 이것저것. 그래서 짐리더 자리는 나한테 제격이야.”

미나키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의 음식이 짠 이유. 그가 여자와 뒹구는 밤이 유난히 많은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언제나 그가 다른 곳을 보는 듯했던 이유. 무력감이 미나키를 짓눌렀다.

엔쥬시티의 가을은 항상 추웠지만 그들의 밤은 뜨거웠다.

*  *  *


 

가을을 거듭할수록 마츠바는 점점 푸석거렸다. 그의 음식은 매번 전보다 짠 맛이었다. 미나키가 엔쥬로 돌아왔을 때 그는 아사기시티에 가있었다. 미캉과 같은 침대에. 협회는 그에게 경고를 내렸다.


그는 새벽에 엔쥬시티로 돌아왔다.


“여어, 미나키.”


듣기 괴롭도록 말라붙은 목소리였다.


“...아침에 오지 그랬어. 미캉이랑 있었다며.”

“네가 왔는데 어떻게.”

“미캉은 아침에 혼자 일어나겠군.”


대화는 건조했다.


“너도 날 기다리고 있었잖아. 잠도 안 자고.”

“너도 안 자잖아.”

“나는 안 자도 괜찮아….녹차라도 가져올까?”

“아니, 자자.”


그가 갸웃거렸다. 같이? 피식거리는 그의 웃음은 영양가가 없었다.


“제발, 자.”

“......최근 더 극성이야. 그런 계절인가봐.”


그리고 미나키는 들었다.


“죽여줘, 미나키.”


못 들은 척 했다.


*  *  *


 

마츠바는 거의 언제나 미나키를 이겼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는 일련의 과정 중에도 습관처럼 싱글거렸다. 표정에서 웃음이 지워지기 전에 그는 미나키의 눈을 가렸다. 시각을 잃자 통각이 예민해져 손가락부터 발끝까지 그의 몸의 떨림이 너무나도 가깝게 미나키에게 전해져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가 어떤 눈을 하고 있었는지 미나키는 볼 수 없었다.

  

다만 미나키의 시야를 가리던 손이 힘없이 툭 떨어지고 나서, 눈을 감은 그는 편안해 보였다.


 

*  *  *


 

그의 장례식에서는 흰 옷을 입고 노래를 불렀다. 그는 한때 수도승이었다. 미나키에게는 낯선 방식의 장례였다.


산 것보다 죽은 것과 친했던 그는 관이 어울리는 남자였다.


 

*  *  *


 

미나키는 엔쥬시티를 뛰쳐나와 죠토지방을 떠났다.


*  *  *


 

미나키는 리니어 트레인의 창가 좌석에 앉아있었다. 빠르게 바뀌는 창밖의 풍경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뒤섞여 흐릿했다. 그의 일생은 이것과 닮은 모습이었던 걸까.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불이 타올랐다. 괴로우리만치 밝았지만 뜨거움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불은 오랫동안 불타다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다시 칠흑. 멀리서 몇 명의 남자가 떠드는 소리가 불분명하게 드문드문 들려왔지만 조용했다. 그러다 별안간 땅에 삽을 꽂아넣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흙이나 모래 같은 것이 고체 표면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그 일련의 과정을 불규칙하게 반복하는 소리만이 수십번 반복되어 들렸다. 미나키는 미칠 것 같았다.


드디어 눈을 떴을 때는  리니어 트레인 안이었다.

즐거운 여행 되셨나요? 코가네시티, 코가네시티에 도착했습니다. 잊어버린 물건이 없는지 잘 확인하고 천천히 하차해주십시오. 고객님의 다음 승차를 기다립니다.

쓸데없이 긴 안내방송이라고 멍하니 생각하며 미나키는 열차에서 발을 내딛었다. 죠토의 땅을 밟고 죠토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고향의 공기는 낯설기만 했다. 고개를 들었다. 플랫폼의 끝에는

 마츠바?


봄바람에 실려 하늘거리는 끝자락이 빨간 보라색 목도리가 미나키의 시선을 잡았다. 검은 긴소매옷, 회색 바지. 미나키가 시선을 올려 남자의 머리를 보았다. 살랑거리는 금발.  그는 틀림없이


“마츠바?”


미나키가 그에게 다가섰다. 그가 얼굴을 들었다. 한 치도 틀림없이 마츠바인 이목구비.


편안하게 잠들었을 터인 그가 서있었다. 그는 죽어갈 때보다도 슬픈 눈빛이었다. 그는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미나키에게는 어떤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미나키는 손을 뻗었다. 그도 팔을 뻗었다.


미나키를 끌어안기 전에 그는 봄바람에 섞여 날아가,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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