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8)

  1. 빌헬름

 

  죽고 싶었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한 것은 백 년 조금 넘은 청소년 시절이었다. 빌헬름 쿠르트는 불사의 몸으로 백 년 하고도 또 오십 년을 넘게 살았지만, 그는 아직 자살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나도 긴 생을 살았기에 삶에 질려있었으나, 왕자가 죽인 동물이나 인간의 시체를 치울 때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가 죽음이 아님을 깨달았다. 왕자는 말했다. 죽음이야말로 빛이요 안식이라고. 하지만 불사의 남자는 왕자의 잠옷을 갈아입히고 머리를 빗고 죽을 떠먹일 내일이 없는 것을 상상하곤 속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문득 그는 자신이 또 백 년 뒤에도 살고 싶을 것인지 궁금해한다.

 

 

빌헬름이 거의 모든 연성에서 '죽고 싶으나 죽을 수 없어 고통스러운 남자'로 비추어지길래 빌헬름이 죽고 싶지 않다면? 하는 생각에 휘갈겨본 것.

 

 

 

  2. 무제

 

   인도자에게 선택받기 전까지, 전사는 동시에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으며, 또 여러 장소에 존재한다. 그네들은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기억을 상실하고 있으며, 감정을 느끼지 않는 동시에 허무하다. 그러나 인도자에게 선택받은 전사는 험난한 운명이 예정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전사는 인도자를 기다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전사일 수 있는 것이다.

 

 

 

 3. 메리아+벨린다 

 


 "너는 누구니?"

 

 연분홍빛 미소를 걸친 고운 소녀가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나는……, 벨린다."

 

 눈의 여왕이라고도 불리우는 하얀 여인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소녀는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당신은 벨린다구나? 나는 메리아야."

 "그건 내 어릴 적 이름이에요."

 

 조소하는 소녀에게 여자는 여유롭게 고했다. 소녀의 표정이 일순 뒤틀렸다. 얇은 것에 힘만 잔뜩 주어 갈라져나오는 목소리로 소녀는 소리쳤다.

 

 "당신은 내가 아니고, 메리아도 아니야! 당신은 가짜일 뿐이지!"

 

 소녀의 고사리 같은 손가락이 여자의 목을 휘감더니 우악스럽게 틀어쥐었다. 소녀와 함께 여자가 쓰러졌지만 아무런 소음도 나지 않았다.

 

 "당신은 죽은 내 흉내를 내면서 천천히 오빠를 망가뜨렸어. 당신이 미쳐버렸기 때문이야! 당신이 오빠를……. 오빠는 당신을 사랑한 게 아니야! 내 흉내를 내는 당신도 오빠를 사랑하지 않았겠지!"

 

 기계처럼 차가운 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혹은 않았다. 씩씩거리며 여자의 목을 조르다가 이내 제 풀에 지쳐 그녀의 목에서 손을 뗀 소녀는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말해봐. 오빠를 사랑했어?"

 "당신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거에요. 당신 말대로 저는 당신의 카피니까요."

 "불완전한 것이."

 

 "그렇게 들어왔지만."

 

 하얀 여자가 말한다.

 

 "특히, 인격 기능이 불완전하다고 들어왔죠. 그렇지만…, 당신을 대면해보고 나니 알겠군요. 나의 인격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오리지널의 인격을 그대로 복사했을 뿐."

 "당신 따위랑 내가 같다고 말하는거야!"

 

 소녀는 필사적으로 부정한다. 소녀는 상처받고 있다. 여자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말한다. 그녀는 그다지 소녀를 감싸고 싶지 않다.

 

 "그래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난 당신이 느끼는 바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요."

 

 여자는 눈을 뜨고 한참 전부터 자신을 원망스럽게 노려보던 소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오빠의 사랑을 당신으로부터 빼앗은 제게 질투하는거죠?"

 

 우후후후. 여자는 불길한 웃음을 흘린다. 그럼 이제 제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는 그만해주시지 않겠어요? 당신이 아무리 목을 졸라봐야 여기서는 그 누구도 살아있지 않은 만큼 그 누구도 죽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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