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13)

KOF 14 얼마 전 정도 시점, 이오리 위주 글. 고양이도 나오고 쿄도 나오고 신고도 나오지만 아마 논커플링. 암경 혹은 경암으로 읽어주셔도 좋습니다.

트리거워닝: 애완묘의 유기·동물학대에 대한 묘사 및 사용된 관련 소재에 대한 고찰의 부재)



“어이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


으슥한 골목, 한밤중. 창백한 달빛 아래 길게 그림자가 늘어져있다. 야가미 이오리는 쭈그려 앉아있다. 트레이드마크인 머리카락의 붉음이 번지기라도 한 듯이 주위까지 온통 빨갛게 된 모습이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질척거리는 손에 무언가가 들려있다.


쿄는, 그것을 보고 말았다.


겁내거나 물러서지는 않지만, 눈을 찡그린다. 냄새마저 비릿하다.


쿠사나기 쿄를 인식한 야가미 이오리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희번뜩대는 눈을 하고, 낮게 웃는다. 그 웃음소리는 마치 유령의 웃음처럼, 불길함이 가득했다.


“흐흐…… 쿄. 나와 싸울 마음이 들었나?”


“너, 그건 대체 왜……”


내게 경멸을 사기 위해서? KOF에서 처음 그와 재회했을 시절이라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봐온 야가미 이오리라는 자는 그렇게 우회적인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는 정확히 자신만을 향해, 그 누구보다도 올곧게 감정을 쏟아왔다.


“덤벼라, 쿄!”


“크윽, 여전히 말은 안 통하는군……!”


날아오는 보랏빛 불꽃을, 쿄는 가볍게 자신의 붉은 불꽃으로 튕겨냈다. 여느때보다도 짙어진 듯한 청보랏빛. 잃어버렸었던 불꽃과 함께 쿄로서는 한 번도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떠한 절망도 함께 되돌아왔다는 듯이, 옛날처럼 슬픈 울림으로 웃고 있다.


“한눈 팔지 마라, 쿄! 내게 집중해라!”


네, 네. 그러시겠지요. 시끄럽네―


“한눈은 누가 팔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야가미!”


쿄의 강 펀치가 이오리의 복부에 명중한다. 이오리는 잠지 주춤했다가, 다시 일어나 공격을 되돌려준다. 그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쿄의 뺨을 비껴간다.


어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야가미 이오리.


꼭 옛날로 돌아가버린 것 같잖냐.




* * *




 ―냐아.


 자신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에, 이오리는 반사적으로 길을 내려다보았다.


 바로 옆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거리로부터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이오리는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주인에게 버려진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일까, 온몸의 새카만 털은 약간의 윤기마저 흐르고 있었다. 검은색 사이에서 눈만이 금빛에 가까운 연두색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성체라고 보기에는 아직 자라는 중인 듯, 크기는 조금 작았다. 그러나 주변에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뭐냐.”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그러자 고양이도 곁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함께 나아갔다.


 “따라오지 마라.”


 자신이 어디서 온지도 모를 고양이를 돌볼 만큼 여유로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오리는 마치 고양이가 알아듣기라도 할 것처럼, 더 똑똑히 말했다. 


 “짐승이여, 당당하게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아라.”


 ―……


 고양이는 조용히 이오리의 눈을 빤히 마주보더니,


 ―냐아아.


 이오리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는, 오히려 그의 다리에 뺨을 부비작거리는 것이었다. 이오리는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싫지는 않은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조금 풀어지고서는,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가 나왔다.


 “꺼져라, 고양이.”


 그렇게 말해보았지만, 고양이는 오히려 그 낮은 목소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떨어질 생각은 않고, 계속해서 야가미 이오리를 따라 걸었다.


 별 수도 없이, 야가미 이오리는 허름한 아파트까지 고양이와 동행했다.




* * *




 다른 생명체의 곁에서 잠들고, 눈을 뜬다는 것. 그것은 이오리에게 있어서는 낯선 감각이었다.


 분명, 기억을 뒤져보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흐릿해진 기억을 들여다보고 있고 싶지는 않았다. 쿠사나기 쿄 말고는 모든 것이 흐릿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자신은 무얼 위해 태어나,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야가미 이오리에게 있어서의 유일한 정답은,


 ‘죽이기 위해서다.’


 뱀이, 목을, 심장을, 감아온다.


 ‘쿠사나기를 죽여라.’


 뱀의 목소리가, 조소한다.


 ‘어차피 너의 삶은 그것뿐인 걸, 너도 알고 있을 터.’


“꺼져라, 뱀.”


‘주인이여, 내게 저항해도 소용 없다. 왜냐면―’


―캬아아.


불현듯, 뱀이 기어들어갔다.


혈관을 짓누르던 고통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고양이……?”


―냐앙.


이오리가 의식하자, 고양이는 회답하듯 도도도 걸어와 거친 손등을 핥아주었다.


“……네놈이 뱀을 쫓았나.”


고양이는 대답 대신 작은 몸을 기대어왔다.


괜시리 쓰다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따스했다.


따스했다.


그것을 깨닫자, 야가미 이오리 안의 무언가가 무너졌다.


무너지는 감각은 깨진 유리처럼 날카롭고 얼음처럼 시려서, 그 순간의 이오리는 차라리 뱀의 꽉 조여오고 화끈하게 불타는 아픔이 낫다고까지 생각했다. 적어도 익숙한, 길들여진 아픔을.


정체불명의 아픔. 그것은 전부, 따뜻하고 보드라운,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고양이 때문이었다.




 * * *




고양이는 이오리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았다. 혹은 요구했더라도, 이오리 쪽에서 그것을 무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이오리가 라이브하우스에서 연주를 하는 밤 시간에 알아서 먹이를 찾고, 그가 귀가하는 새벽녘이 되면 언제나 그의 곁으로 되돌아오는 습관을 유지했다. 그리고 늘 마음의 경계를 허술하게 하지 않는 이오리라고 해도 점점 그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나흘째, 그것이 갑자기 끊겼다.


녀석, 드디어 질린 건가.


이오리는 오랜만에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그토록 꺼지라고 말했었지만 정작 이렇게 되니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보드라움 속에서 잠들던 오후들, 사람의 것보다 훨씬 가벼운 숨결에 깨어나던 저녁들. 혐오스러운 뱀의 목소리 대신 귓가에서 울렸던 야옹거림들.


하지만 그것들 전부가 자신을 약하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이것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다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건만.


그것은 이튿날 다시 돌아왔다.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비극적이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이오리는 그 고양이를 알아보았다. 잊을 수 없었다.


돌아온 고양이는 발랄하고 생기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싸움에서 진 파이터처럼 너덜너덜해져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고양이는 파이터가 아니다.


‘치료를’


(그러나, 이오리에게 그런 특기는 없었다. 허름한 동네에는 수의사도 없었다. 이오리 자신조차도 필요할 때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일이 없다시피 했다.)


고양이는 한쪽 눈만 겨우 뜬 채, 이오리를 향해 눈빛을 보내왔다.


━━━.


고양이의 목울대에서 나온 것은 긁는 듯한 소리가 전부였지만, 이오리는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인 것을 알았다.


‘후후후…… 흐흐……’


밤은 너무나 깊었고, 고양이도 더이상 뱀을 쫓을 수 없었다.


 ‘주인이여…….’


“하, 하하…….”


‘너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다……. 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걸, 너도 알겠지…….’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 *




“그 녀석, 우는 것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어. 1996년처럼.”


“오오, 구체적…… 이네요.”


“내가 참가했던 대회를 잊을 수는 없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저도 쿠사나기상이 참가한 KOF는 전~부 기억하고 있다구요! 헤헤.”


“그러냐.”


“에엑~ 좀 더 기뻐해 주세요!”


“아니, 잊어버려도 되니까. 랄까 잊어라, 좀. 훠이훠이.”


“쿠사나기상~”


신고의 우는 소리를 한쪽 귀로 흘리는 쿄의 의식은 야가미 이오리에 관한 생각으로 둥실둥실 흘러간다. 구름처럼 유유자적하게. 연한 햇빛이 다정하게 내리쬐는, 그런 낮이다. 그러나 쿄는 전날 밤을 생각한다.


‘검은 고양이, 인가…….’


피에 젖은 손으로 죽은 고양이를 들고, 슬픈 눈으로 웃던 야가미.


‘그러고 보면, 불행의 상징이라는 얘기도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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